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 책임론에 이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서방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은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참여와 코로나19 발원지 조사를 놓고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과 마찰을 빚은 데 이어 “대만에 무기를 팔지 말라”며 프랑스를 압박하고 나섰다.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해치기 싫다면 대만과의 무기 거래 계약을 취소하라”고 프랑스에 촉구했다.
그는 신화통신 기자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려는 프랑스 정부의 계획에 대해 중국이 철회를 요구했지만, 프랑스의 관련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자오 대변인은 “우리는 외국이 대만과 무기판매나 군사 교류를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며 “우리는 이미 프랑스에 우려를 표명했고, 다시 한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켜달라고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강하게 항의하자 프랑스 정부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 모두가 힘을 집중해야 한다”며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외무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우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계속 존중하며 전염병과의 싸움에 모든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며 “우리는 대만과 맺은 계약 사항을 존중하며 1994년 이후 이런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대만은 프랑스의 방산기업 DCI로부터 8억 대만달러(328억원 상당) 규모의 다가이(DAGAIE) 미사일 교란장치 발사기 구매를 추진중이다.
대만은 1991년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6척의 라파예트급 호위함(프리깃함)에 다가이를 장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가이는 적이 미사일 공격을 하면 교란 장치를 발사해 회피하는 유도탄기만체계이다. 대만은 1992년 프랑스로부터 미라주 전투기 60대를 구입한 적도 있다.
중국은 이미 대만의 WHO 참여 문제를 놓고 미국 등과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12일 대만이 WHO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을 지지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회원국이 아니라 옵서버로 WHO 총회에 참가해오다 2016년 반중 성향인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한 후 옵서버 자격도 상실했다.
이번 법안은 “대만은 세계 보건 위기 때마다 크게 기여한 모범 국가이며, 세계 보건 협력에서 대만을 배제하는 것은 팬데믹으로 초래된 위험을 더욱 키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오는 18∼19일 WHO 총회에서는 대만의 WHO 참여 등을 놓고 미·중 충돌이 격화될 전망이다.
중국은 대만의 WHO 가입 여부를 놓고 뉴질랜드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외교부 장관은 지난 7일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대만이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놀라운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옵서버로 WHO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동조한다”고 밝혔다.
피터스 장관은 뉴질랜드주재 중국대사관이 “중국은 하나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반발하자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는 대만의 성공 비결을 배우려고 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어 자오리젠 대변인은 “대만의 WHO 가입을 지지하는 뉴질랜드의 입장을 개탄한다”며 양국관계를 저해할 수 있는 잘못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피터스 장관은 12일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 문제를 놓고 마찰을 빚은 호주에 대해 대형 유류업체의 소고기 수입을 일부 중단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사이먼 버밍엄 호주 통상투자관광부 장관은 12일 ‘사소한 기술적’ 위반사례 등을 문제 삼은 중국 정부의 조치로 인해 호주 대형업체 4곳의 대중 소고기 수출이 막혔다고 밝혔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중국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12일부터 호주 기업 4곳의 육류 제품의 수입 신고를 일시 중단시키기로 했다”면서 “중국 해관은 호주의 일부 기업이 검역 요구 사항을 위반하는 사례를 수차례 적발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호주산 보리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에 이어 나왔다는 점에서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놓고 불거진 양국의 갈등이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지난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 방안에 지지를 촉구하자 중국인의 분노가 호주산 물품에 대한 불매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발원지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미국이 중국 책임론을 물고 늘어지고 있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서방과 중국이 대립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