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할 일을 합니다”… ‘몸에 그림 많은’ 소년범 가르치는 스승들

입력 2020-05-14 16:12 수정 2020-05-14 16:13

춘천소년원 생활관 교실에는 팔에 용이 그려진 남학생들이 투박한 손으로 마네킹 머리카락을 잡고 헤어 롯드를 말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선생님은 웃으며 머리카락 빗질을 도왔다. 옆 교실 검정고시반 학생들은 꼿꼿이 고개를 들고 열변을 토하는 선생님 이야기에 집중했다. 황사현(41) 교사는 “영화 같은 데선 소년원이 음침하게 나오는데 일반 학교랑 다를 바 없어요”라고 말했다. 강동진(37) 교사는 “약간 다른 점은 몸에 그림이 많다는 거죠”라고 웃어 보였다.

최근 10대 강력범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소년범을 매일 마주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은 소년범들이 평범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묵묵히 노력한다. 스승의날을 앞둔 지난 13일 강원 춘천시 춘천소년원에서 두 교사를 만났다.

강 교사는 “나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해서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 동네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고 한다. 남을 괴롭히고, 술 담배에도 손을 일찍 댔다가 군대에 다녀와서야 철이 들었다. 11년 차인 그는 “내 학창시절을 보는 듯 친근하다”고 말하는 제자가 벌써 2000명이다.

주변에서 만류도 적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소년원 선생님을 꿈꾼 황 교사는 시험 합격 후 6년 내내 소년원을 지망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위험하고 우울한 곳 아니냐며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는 “7전 8기 끝에 왔는데 너무 행복하다”며 “여기는 학교가 집이고 이 아이들이 가족이다. 이렇게까지 깊은 교류를 하는 공간은 없을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소년원에는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이 온다. 강 교사는 “동네에서 털이란 털이를 다해서 소년원에 온 초등학교 5학년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초등생은 가정에서 방치된 채로 자라 소년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한글도 못 떼고 세수하는 법도, 양치하는 법도 몰랐다고 한다. 강 교사는 “씻는 법도, 한글도 다 하나하나 알려 줬다”고 회상했다.

아이들의 기구한 사연만큼 선생님들은 가슴 아픈 일도 겪는다. 강 교사 학급엔 사람에게 마음을 못 열어 친구나 선생님과 대화하지 않던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신뢰가 쌓인 뒤엔 강 교사와 대학 면접에 동행도 하고 모범학생으로 조기 퇴원했지만, 학생은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사회 밖에서는 그 아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슬픈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황 교사는 스승의 날에 아이들에게 종이로 접은 학 선물을 받았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아이들이 학을 접길래 미모의 여선생님에게 주려나 보다 했는데 스승의 날에 내 교탁에 학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며 “유리병이 없어 빨래 바구니에 담겨 있었는데 아이들 정성이 감동스럽더라”고 웃었다.

소년범에 대한 인식 변화와 소년원을 나가서도 학생들이 적응할 환경이 마련됐으면 하는 게 선생님들의 바람이다. 강 교사는 “잘못에 대해 처벌 받는 건 당연하지만, 모든 10대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황 교사도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다시 소를 들일 수 있잖아요”라며 “학생 개인뿐 아니라 한 가정을 회복하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춘천=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