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제기한 4·15 총선 개표조작 의혹이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분실 경위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스터리의 핵심은 “누가 투표용지 6장을 빼돌렸는가”다.
민 의원이 조작 증거로 공개한 투표용지 6장은 구리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리되던 잔여투표용지로 확인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잔여 투표용지 일부가 탈취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럼에도 투표용지 유출에 대한 관리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잔여 투표용지는 봉인이 해제된 상태에서 허술하게 보관되다가 누군가에 의해 탈취된 것으로 보인다. 민 의원은 투표용지를 누구로부터 받았는지 함구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라졌던 투표용지가 다시 나타난 경위는 이렇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4월 15일 선거 당일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구리시체육관에서 개표 작업이 진행됐다. 구리시 수택2동 제2투표구에서 이송된 투표함을 열어 개표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그런데 개표 도중 투표자 수보다 투표용지가 2장 더 많은 오차가 발생했다.
이 오차가 파악된 뒤 선관위 관계자는 봉투에 봉인돼 선거가방에 들어가 있던 잔여 투표용지를 꺼내 확인했다. 그 결과 제2투표구가 아닌 다른 투표구의 투표용지 2장이 제2투표구 투표용지로 분류된 것으로 파악돼 바로 잡았다. 그 이후 잔여 투표용지는 봉인되지 않은 채 선거가방에 보관됐다고 한다. 잔여 투표용지와 투표록 등을 보관하는 선거가방은 구리시체육관 안에 있는 체력단련실에 보관돼 있었다.
구리시선관위는 이 가방에 있던 투표용지가 분실됐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민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4·15 총선 개표조작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 대회’에서 투표용지를 공개한 뒤에야 확인 과정을 거쳐 분실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민 의원은 투표용지 일련번호까지 공개하면서 “투표관리관 날인 없이 기표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발견된 비례투표용지”라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 일련번호와 언론보도 사진 등을 토대로 수택2동 제2투표구 잔여투표용지 중 6매가 분실된 사실을 확인했다.
기자가 13일 구리시 인창동에서 만난 구리시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선관위가 확인해보라고 해서 곧바로 보관 중인 잔여 투표용지를 확인해봤더니 6장이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누가 잔여 투표용지를 훔쳐갔는지는 현재 미궁이다. 선관위 내부에선 4월 15~16일 개표 도중 탈취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구리시체육관에는 경보시스템이 설치돼 있는데 선거일 이후 경보가 울린 적은 없다고 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잔여 투표용지를 담은 봉투를) 개봉한 때부터 개표 종료가 이뤄진 시점(4월 16일 새벽 3시) 사이에 없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선거일 이후 탈취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4월 16일과 17일 사이에 투표용지 탈취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 실제 잔여 투표용지가 보관됐던 구리시체육관 내 체력단련실은 잠금장치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아무나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4월 16일 오전 4시쯤엔 개표 작업을 위해 설치됐던 시설 철거를 위해 외부업체 직원들이 구리시체육관을 드나들기도 했다. 기자가 직접 찾아가서 만난 구리시체육관 관계자는 “체력단련실은 선관위 요청으로 개방해 둔 것”이라며 “체력단련실 열쇠는 1개뿐인데 선관위에 넘기지 않았다. 그동안 계속 열려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개표조작 의혹에 불을 때던 민 의원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빼박’의 물증은 왜 없겠냐. 세상이 뒤집어질 증거를 폭로하겠다. 조작선거 사건이 분수령을 맞을 것”이라고 적었다.
검찰 수사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탈취 물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기자가 구리시체육관 CCTV 화면을 직접 확인해보니 체력단련실은 사각지대에 있었다. 카메라가 체력단련실 쪽을 비추고는 있지만 누가 드나드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각도였다.
민 의원은 개표조작 의혹을 더욱 거세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 수사 착수에 대해 “부정선거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엔 “오늘 접수되는 결정적 증거와 제보에는 500만원, 내일은 400만원, 15일 300만원, 16일 200만원, 17일에는 100만원을 드리겠다”고 공언했다. ‘투표관리관은 투표가 끝난 후 지체없이 투표함, 잔여투표용지 등을 관할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에 송부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거론하며 “잔여투표용지를 개표소 체력단련실로 가져가 숨긴 선관위 직원”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거스르는 의혹 제기라고 비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민 의원은) 인천 사전투표에서 부정행위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구리 지역의 본 투표용지를 흔든다”며 “우리 선거관리시스템, 투개표관리시스템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투표용지 탈취행위가 불법인데 탈취된 용지를 국회에서 버젓이 공개하는 게 참 부끄럽다”고 말했다.
구리=김이현 기자, 김경택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