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기숙사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A씨는 지난 9일과 11일에 기숙사 측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지난 4월 24일~5월 6일 사이 이태원 소재 클럽, 주점 등을 방문한 적이 있는 모든 입주자는 즉시 그리고 반드시 아래 링크로 신고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방문한 사실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강제퇴거 조치하겠다”는 엄포가 이어졌다.
링크된 해당 문서에는 이름, 학번, 거주 동호실, 방문장소와 일자 등을 자세하게 적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개인 신상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A씨는 “학번 같은 개인정보가 왜 필요한지 설명이 없어 의아했다”며 “최근처럼 확진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때에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더 숨어버리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근 이태원 클럽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맞아 기존 방역정책의 강력한 개인정보 수집 및 공개 대신 개인정보를 더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창기 확진자의 나이, 거주지, 세부 동선 등 높은 수준의 정보 공개를 지지했던 여론도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지난 11일 서울시 시민참여 게시판에는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 기존의 개인별 동선공개 대신 ‘성별, 나이를 특정하지 않고 n명의 사람들의 동선을 묶어서 공개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기존 방역정책의 허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기본권에 해당하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련된 원칙이 기존 방역정책에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강력한 정보공개보다 개인들의 협조가 방역에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문 장소와 시간 외에 확진자의 개인적 특성을 공개하는 건 역학조사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사람들이 거짓말하거나 숨는 것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대신, 자발적인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가 익명검사를 시작한 이후 일일 평균 선별진료 건수는 약 1000여건에서 지난 12일 8343건으로 약 8배 늘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