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정치집단들이 스스로 규칙을 어겼는데도 법이 대응하지 못한다면, 소수를 보호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이대로 두면 비슷한 형태의 편법적이고 변칙적인 선거운동과 정치활동이 만연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지난달 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의 비례대표선거에 대해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한 시민 선거소송인단 측 대리인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의 말이다. 거대 양대 정당이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이라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무력화시켰고 그 결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마주하게 됐다는 취지다. 지난 12일 양 변호사를 만나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하게 된 배경과 향후 재판에서 주장할 내용에 대해 들어봤다.
양 변호사는 먼저 선거무효소송 사태를 초래한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통합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방식으로 비례정당을 만들었다. 거기에 더불어민주당까지 비례정당을 만들기에 정치적 해결이 어려워졌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당 등 다른 정당마저 나서지 않으면서 결국 사태 수습 책임이 시민들에게 넘어왔다고 했다.
양 변호사는 쉽지 않은 재판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전례가 없는 소송이고, 기각될 가능성도 많다고 본다”고 했다. 대통령·국회의원선거에 대한 선거무효소송은 대법원 단심으로 끝난다. 대법원이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무효소송청구를 인용한 전례는 없다. 정치적 갈등상황에 있어 명백한 위법사항이 발견되지 않으면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사법소극주의’ 때문이다.
그러나 양 변호사는 “국민 상당수 내지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치집단이 이렇게 막 나가는 경우에 법이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수파에 대한 테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이 선거를 무효로 돌리는 판단은 쉽지 않지만, 다음 선거에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의미 있는 소송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변호사는 지난 1월 14일 국회가 개정·신설한 공직선거법 규정을 선거무효 주장의 토대로 삼는다. 개정된 47조 2항은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추천할 때는 당헌 또는 당규로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신설된 52조 4항은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비례대표 후보자 등록은 무효로 간주한다.
양 변호사는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 총선 당시 최고위원회·공천관리위원회·선거인단의 구성과 비례대표 후보명단 선정 과정에서 당헌·당규를 위반하거나 비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친 사례들을 근거로 비례대표 후보 등록이 무효였음을 입증할 계획이다.
양 변호사는 지난달 14~15일 48시간 동안 84명의 시민 선거소송인단을 모았다. 그는 “선거일로부터 30일 내 소송을 내야 했고, 선거 전에 소송인단을 모으면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논란이 예상됐다”며 “재빨리 원고들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번 소송은 별도 변호사비용이 없는 공익소송으로 진행된다. 인지대와 송달료 등 소송비용은 시민 소송인단이 십시일반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17일 사건을 접수해 특별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에 배당했다. 양 변호사는 지난 11일과 12일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 당사의 선거서류 등에 대해 각각 증거보전을 신청하면서 본격적인 소송절차에 돌입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