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 고장’ 보고도 안했다…GP 총격, 군의 축소대응

입력 2020-05-13 17:04 수정 2020-05-14 10:16

북한군이 지난 3일 비무장지대(DMZ) 남측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한 직후 우리 군은 기관총이 고장나 대응사격이 늦어졌으나 이 사실을 당일 상급부대에 보고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은 당시 북한군의 ‘우발적 실수’ 근거 중 하나로 북한군 고사총 유효사거리가 짧다고 설명했으나 13일 이를 번복했다.

<2019년06월11일 최현규기자 > 자료사진 - 북한 군사분계선 인근 GP 초소

합동참모본부는 GP 총격과 관련해 계속해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이날 사건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선 확인된 의혹은 우리 측 GP에 있던 K-6 기관총(12.7㎜ 구경)이 고장 나 최초 대응 사격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현장부대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GP 초소장이 당일 오전 8시1분 원격으로 K-6 기관총 사격을 시도했으나 불발됐다”며 “3번이나 시도했는데 발사되지 않아 기능 고장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8시13분 K-3 기관총(5.56㎜)으로 15발을 대응 사격했다. 당시 GP에 근무 병사가 북한군 총격을 처음 인지한 시각은 오전 7시41분이다. 32분 만에 첫 대응 사격이 이뤄진 것이다.

K-6 기관총이 발사되지 않은 이유는 공이 파손으로 조사됐다. 공이는 탄환의 뇌관을 쳐 폭발하게 하는 금속 막대다. 현장 부대는 최전방에 비치된 화기의 핵심 부품이 고장 났는데도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첫 대응 사격이 10여분가량 지체됐다. 합참 관계자는 “하루에 한 번 하는 GP 현장 점검으로 파손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군의 14.5㎜ 고사총 탄두가 발견된 것은 K-3 기관총으로 대응한 직후였다. 사단장은 비례성의 원칙을 감안해 고사총과 비슷한 구경인 K-6 기관총으로 다시 사격하라고 지시했다. GP 병사들은 고장 나지 않은 수동 K-6 기관총을 전방으로 옮겨 8시18분 추가로 15발을 쐈다. 모두 합쳐 30발을 조준 사격한 것이다. 당시 북한군이 쏜 총탄은 4~6발 정도로 추정됐다. 합참 관계자는 “(돌발 상황 대처를 보면) 해당 GP는 훈련이 잘 된 GP”라고 평가했다.

남북 군사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GP(감시초소) 시범철수를 진행하고 있는 11월 15일 강원도 철원지역 중부전선 GP가 철거되고 있다. 폭파되는 GP 왼쪽 뒤편으로 철거중인 북측 GP와 북한군이 보이고 있다. 2018.12.26. 뉴시스

K-6 기관총 고장 사실을 당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육군 지상작전사령부는 사건 다음날인 4일 현장 조사를 한 뒤에야 기관총 고장으로 첫 대응 사격이 무산된 사실을 파악했다.

군 당국은 고사총 유효사거리에 대한 기존 입장도 이날 번복했다. 합참은 지난 3일 브리핑에서 북한군 총격이 우발적으로 이뤄진 근거로 고사총의 유효사거리를 들었다. 유효사거리가 1.4㎞에 불과한데 북한군 GP와 우리 군 GP 간 거리는 1.5㎞ 이상이라며, 사거리가 짧은 총으로 의도적인 도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합참 관계자는 이날 “1.4㎞은 대공 유효사거리이고, 대지 사거리는 그것보다 길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을 바꿨다. 다만 합참은 이번 총격이 북한군의 우발적인 상황이라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