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자 반등 기대와 달리 경기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압박 수준을 넘어 거의 협박에 가까운 수준인데, 채권 트레이더들이 마이너스 금리에 베팅을 늘리고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발언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쯤되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관련 운신의 폭이 줄어들면서 독립성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
12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유로달러 옵션은 내년 중반 연방기금 금리가 마이너스 0.5%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는 지난 7일 연방기금 선물시장에서 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간 이후 연은 관계자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채권시장 트레이더 분위기는 마이너스 금리에 베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뱅크오브어메리카(BofA)에 따르면 연준 정책 방향에 대한 투자자 전망을 반영하는 금리 옵션은 미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을 23%로 봤다. 지난주 9~10%보다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는 4월 실업 수당 신청자가 3300만명으로 급증하는 등 감원 한파에 디플레 우려까지 겹치면서 장기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톨베이컨 캐피털 어드바이저스의 마이클 퍼브스 CEO는 “마이너스 금리가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현실화될 수 있는 통화정책”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다른 국가들이 마이너스 금리로 혜택을 입는 데 미국도 이런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채권시장의 압박 분위기에 편승하고 나섰다.
하필 코로나19 사태이후 미국보다 더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는 영국의 브로드벤트 잉글랜드 은행 부총재도 추가 통화정책 완화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마이너스 금리도 잠재적인 정책수단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연준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주장하는 쪽은 경기 침체가 길어질 경우 정부의 천문학적인 국채 발행에 따른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미 재무부는 4월 재정적자가 7379억 달러로 월간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올 회계연도 적자는 3조7000억달러로 2차대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다 미 의회는 4번째 코로나19 부양책을 논의 중인데 그 규모가 3조 달러가량으로 예상된다. 국채 이자가 오를 수밖에 없어 현재 제로금리 상태에서 시행중인 무제한 양적완화(QE)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특히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은행들의 대출도 활발하게 이뤄져 기업들이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인 JP모건까지 최근 유동성 관련 보고서를 들이대면서 “네거티브 금리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만, 만약 네거티브 금리가 -10bp(1bp=0.01%포인트) 등 아주 미약하게 1~2년씩 너무 길게 유지되지만 않는다면 그 효용이 비용을 넘어설 것으로 믿는다”고 일시적인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권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입장이다. 저축이 사라져 은행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는 데다 머니마켓펀드 등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 연준 관계자들은 이를 우려해 제로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가이던스 포워드를 강화하는 쪽을 선호하고 있다.
위험부담이 큰 마이너스금리 정책 보다는 현재의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을 보완해줄 대안으로 과거 일본과 호주 등이 시행했던 수익률곡선컨트롤(YCC)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장기국채 금리를 일정하게 고정한 상태에서 양적완화를 시행할 경우 물량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시장에서는 YCC 외에도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이 2016년 주장했던 영구적인 통화량 증가를 통해 확장적 재정정책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고 소개했다. 최근 영국이 일시적으로 시행중인 것처럼 마이너스통장계좌처럼 재무부 계좌를 연준에 만들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무슨 방식을 쓰더라도 통화량 증가시 하이퍼 인플레 발생 시 대처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와관련 블랙록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비상시의 재정지출의 운영규모 및 기간을 사전적으로 결정하는 상시기구(SEFF: standing emergency fiscal facility)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13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연설에서 마이너스 금리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도 관심거리다.
앞서 세인트루이스 연은 제임스 불러드 총재는 11일 미국 단기금융 시장 구조가 일본, 유럽과는 다르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타 연은 라파엘 보스틱 총재 역시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대해 "정책툴 가운데 약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도입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