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추적의 결실…호주 ‘성소수자 혐오’ 살인범 잡았다

입력 2020-05-13 14:17
1988년 호주 맨리 인근 노스헤드 해변 절벽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된 스콧 존슨의 새전 모습. 그를 죽인 혐의를 받는 용의자는 유족의 끈질긴 추적 끝에 32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AFP 연합뉴스

1988년 호주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미국인 대학생을 살해한 용의자가 유족의 끈질긴 추적 끝에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잇따랐던 성 소수자 혐오 범죄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호주 경찰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한 살인사건의 용의자 스콧 프라이스(49)를 시드니 자택에서 체포했다. 그는 1988년 미국인 대학생 스콧 존슨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존슨은 1986년 동성 연인을 따라 호주 시드니로 건너갔다가 2년 뒤인 1988년 맨리 인근 노스헤드 해변 절벽 아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그의 나이 고작 27세 때였다.

1988년 호주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미국인 대학생을 살해한 용의자가 12일(현지시간)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경찰은 최초 조사에서 존슨의 사인을 자살로 판단했다. 그때부터 진실 규명을 향한 유족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포기하지 않은 존슨 가족은 사후 검시 청원을 끊임없이 제기했고, 3번째 청원이 있었던 2017년 하나의 실마리가 드러났다. 한 검시관이 스콧의 사인을 ‘동성애 혐오’ 범죄로 밝혀낸 것이다. 결국 경찰은 긴 재조사 끝에 32년 만에 진범을 체포하게 됐다.

30년 넘게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유족은 범인 검거 소식에 참아왔던 눈물을 훔쳤다. 존슨의 형 스티브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감정이 북받치는 날이다. 동생은 내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는 내가 이렇게 하기를 정말 바랐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스티브는 “목숨을 잃은 수많은 성 소수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오늘 일로 위로를 받았길 바란다”며 용의자 검거로 다른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믹 풀러 뉴사우스웨일스주 경찰서장도 체포 소식을 알리며 “내 경력 중 최고의 순간”이라며 “법적 절차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존슨 가족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긴 수사과정을 돌아봤다. 앞서 호주 경찰은 존슨 가족에게 당시 미진했던 수사와 성 소수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점을 사과한 바 있다.

스콧 존슨 사건의 감춰진 전말이 드러나면서 1980년대 인근 해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또 다른 동성애 혐오 살인 사건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12일(현지시간) 호주 경찰이 일대를 수색하는 장면. EPA 연합뉴스

존슨 사건의 감춰진 전말이 드러나면서 1980년대 이 지역 해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또 다른 성 소수자 혐오 살인 사건들도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당시 80여명이 존슨과 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살인사건의 용의자 스콧 프라이스는 13일 법정에 선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