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임세경(44)은 지난 2015년 세계 오페라 팬들의 성지인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 타이틀롤을 맡았다. 이후 스위스 아방슈 오페라축제를 비롯해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유럽 주요 오페라 무대에 우뚝 섰다. 2017년에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토스카’ 주역으로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무대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이집트 정부 주최로 룩소르 하트셉수트 신전 앞에서 열린 ‘아이다’ 무대에 올랐다.
세계 오페라 팬들의 박수를 받은 그가 국립오페라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선보이는 무관중 생중계 공연 ‘나부코’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는 약 80분 정도로 원작의 주요 장면들을 간추린 버전으로 오는 15일 오후 7시30분 네이버TV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히브리인들의 바빌론 유수를 소재로 한 베르디의 ‘나부코’에서 그는 공주 아비가엘레 역을 맡았다. 두 옥타브를 넘나드는 아리아가 10여분간 이어지는 아비가엘레 역은 고난도 기교와 성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배역으로 유명하다.
올해부터 중앙대 성악과에서 교편을 잡은 임세경은 지난 3월 초 이탈리아에서 귀국했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임세경은 “‘나부코’는 어렵다고들 하지만 2018년 그리스에서 이미 무대에 섰던 경험이 있어서 작품 자체로는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서 “이번에 처음 경험하는 무관중 생중계라는 점이 더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 공연이 많은데, 꼼꼼한 발성과 연기가 성악가들의 숙제가 될 것 같다”면서도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진정돼 오페라의 웅장함을 현장에서 전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그동안 수백여개의 무대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특히 서정적인 음색과 극적인 고음을 갖춘 리릭 스핀토 소프라노인 그의 대표 레퍼토리는 ‘아이다’와 ‘나비부인’이다. 성악가로서 이제야 무르익었다는 그는 “이제서야 모든 곡을 편하게 부를 만큼 발성이 단련된 것 같다”며 “앞으로 제 대표 레퍼토리뿐 아니라 ‘라 트라비아타’처럼 가볍고 서정적인 오페라도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2023년까지 출연 무대가 정해져 있었지만 코로나19로 5월 말 폴란드 바르샤바 극장의 ‘나비부인’이 취소되는 등 스케줄이 유동적이 됐다. 하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인생의 분기점이었던 지난 2015년 이후 세계 극장들로부터 캐스팅 제안을 많이 받아 바쁘게 살았었다. 5년이 흐른 지금 또다른 분기점에 선 것 같다”면서 “요즘 교수로서 후배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이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아리아를 부를 때 자기 목소리로, 자기 성격대로 부를 수 있도록 지도하려 한다”며 성악가로서 색깔이 뚜렷한 그의 강점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