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졸업식에 내걸린 나치문양…해커 놀이터 된 줌

입력 2020-05-11 12:15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 사용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증오가 닥쳐올지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보듬어 줍시다(Where there is hate, may we be agents of love)”

아프리카계 미국인 졸업생 제이 윌리엄스의 기도연설이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에 접속한 650여명의 졸업생에게 전송되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시청 화면에 갑자기 하켄크로이츠(나치를 상징 문양)와 인종차별적인 단어가 쏟아졌다. 졸업식을 주관하던 대학 측은 황급히 온라인 졸업식을 중단하고 침투한 인종주의자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미 오클라호마 시립대 총장 마사 버거는 "우리 대학은 인종주의와 편견, 반유대주의에 저항한다. 보안 규정을 지켰음에도 우리 온라인 졸업식이 표적이 됐다"고 설명했다. ABC뉴스 캡처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시립대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와중에 열린 온라인 졸업식이 해커들의 인종차별적 메시지 때문에 중단됐다고 밝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이 인종차별과 혐오를 중단하자는 졸업 연설을 하던 와중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고 미 ABC 뉴스가 11일 보도했다.

마사 버거 총장은 대학 공식 트위터를 통해 “기억에 남을 순간에 악의로 가득한 증오범죄에 당했다. 가슴 아프고 분노한다”며 “오클라호마시립대학은 인종주의, 편견,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대학 공동체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깊은 고통과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2020년 졸업생들은 다양성과 포용성이 뛰어났다. 이런 증오를 이겨내고 앞으로도 사랑과 지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이와 관련 로드 존스 대변인은 “범인을 밝혀내고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지역 경찰과 연방수사국(FBI)이 합동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미국 오클라호마 시립대학 모습. ABC뉴스 캡처

줌 테크놀로지의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해 “우리는 인종․색깔․종교․성별․국적․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나이․장애․유전학에 관계없이 모든 사용자에게 평등하고 존중받는 온라인 환경을 제공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며 “줌은 인종차별을 강력히 규탄하며 사용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여러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회의프로그램인 줌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격리가 보편화된 뒤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플랫폼의 허술한 보안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해커들이 라이브 방송 중 침투해서 성범죄물이나 증오 메시지를 띄우는 등의 방해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4월 초, 피해 제보가 속출하자 FBI는 이를 ‘줌 폭탄’이라 부르고 사용자들에게 사이버 보안을 강화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FBI의 경고에 뉴욕시 교육부는 110만 공립학교 학생들의 줌 사용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줌의 인기는 여전하다. 줌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미국 거의 모든 주의 주지사들이 재택근무를 명령하면서 이 프로그램의 일일 접속자 수는 하루 1000만명에서 2억명으로 치솟았다.

줌 테크놀로지의 최고경영자인 에릭 위안은 “우리 회사는 사용자들을 위해 보안 강화와 해킹 대응교육을 마련 중”이라면서도 “이용자인 당신이 줌의 보안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사용자에게 보안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용자들이 온라인 회의를 할 때마다 일종의 대기실을 만들어서 참가자들을 사전에 걸러내고, 검증된 사람에게만 비밀번호를 전달하라고 조언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