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3명 사람 살린 119셰퍼드 비전이 위독하다

입력 2020-05-11 11:02
재난 현장에 121회 출동해 13명의 인명을 구조한 비전이 훈련하는 모습. 권영율씨 제공

지난 2005년 12월 1일, 삼성생명 구조견센터에서 새 생명이 탄생했다.

독일 셰퍼드 종인 이 강아지는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거듭 태어난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강아지 ‘비전’은 어엿한 인명 구조견으로 성장했다.

지난 2008년부터는 경북소방본부 119 특수구조단 소속으로 특수 임무를 시작했다.

‘비전’은 재난 현장에 121회 출동해 13명을 구조하는 등 7년간 역할을 마감하고 2015년 은퇴했다. 은퇴 당시 ‘비전’의 나이는 10세로 사람으로 치면 70세이다.

‘비전’을 구조견으로 키워낸 장본인 권영율씨는 인명 구조견 훈련사로 일해 온 전문가다. 권영율씨 제공

2008년 11월 경북 영천시 북안면에서 할머니가 실종돼 3일 동안 2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수색을 했으나 성과가 없자 경찰과 소방은 ‘비전’을 투입했다. 그 결과 수색에 나선지 5시간 만에 ‘비전’이 야산에서 탈진 상태인 실종자를 발견했다.

2009년 10월에는 영천 한 병원에서 요양하던 할머니가 운동한 뒤 돌아오지 않자 경찰과 소방은 ‘비전’을 현장에 배치해 6시간 만에 야산에서 실종자를 발견하고 무사히 구조했다.

‘비전’은 험난한 산악 수색에서 빠른 몸놀림과 지치지 않는 체력,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타고난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런 활약으로 2009년 제7회 전국 119인명구조견 경진대회에서 최우수 구조견상을 받는 등 전국 대회에서 3차례나 입상했다.

은퇴 당시에는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우수혈통 양성 및 보존을 위해 ‘비전’의 체세포를 채취해 해당 유전자를 구조견 양성에 활용하기도 했다.

권영율 씨는 “우리나라 특수견들이 대개 사람의 연령으로 70~80대까지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는 노령견의 부상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특수견 정년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권영율씨 제공

재난현장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해 줬던 우리나라 최고의 인명 구조견 ‘비전’이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나라 은퇴 구조견 가운데 유일한 생존견 ‘비전’은 노병(老病)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고 있다.

‘비전’을 오랫동안 진료해온 수의사들도 “현재로선 영양제 주사 외엔 특별히 조치할 것이 없다”고 한다.

평생 고된 훈련 속에 험한 산과 계곡, 붕괴 현장 등을 누비며 사람이 감당할 수 없었던 위험한 일들을 대신해 온 ‘비전’은 이제 조용히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12월 17일 경북소방본부에서 은퇴식을 가진 비전이 구조대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온 사람은 바로 은퇴한 ‘비전’을 맡아 돌보고 있는 ‘아워 비전’ 권영율 대표다. 그는 ‘비전’을 구조견으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인명 구조견 훈련사로 일해 온 권 대표는 최근 특수견들의 복지와 은퇴 후 전문적인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아워 비전’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권 대표는 “우리나라 특수견들이 대개 사람의 연령으로 70~80대까지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는 노령견의 부상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특수견 정년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