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쳤다” 연막치며 조롱…n번방 그놈 갓갓의 실체

입력 2020-05-11 10:11 수정 2020-05-11 10:55
2018년 말 텔레그램 ‘n번방’을 창시한 ‘갓갓’(24)이 9일 검거됐다. 범행 후 1년 6개월여 만이다. 갓갓은 지난해 2월쯤 모습을 감췄다가 올해 1월 텔레그램에 잠시 등장해 “나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며 경찰을 비웃었다. 하지만 끝내 경찰의 마라톤 심문에 무릎을 꿇었다. 모든 범행을 자백하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갓갓에 대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그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수 여성의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 텔레그램 대화방에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9일 갓갓을 소환해 조사하던 중 자백을 받았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구체적인 혐의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수능 치고 왔다”…연막 친 갓갓

지난해 갓갓은 줄곧 자신을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이라고 소개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도 범행 당시 그가 미성년자였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올해 1월 텔레그램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는 “수능치고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갓갓은 24세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교활하게 신분을 위장했다는 의미다.

갓갓은 혼자가 아니었다. 적극적인 범죄 조력자가 최소 2명 이상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갓갓은 ‘반지’와 ‘코태’라는 닉네임을 쓰는 공범과 함께 범죄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n번방 참가자들은 오프라인에서 미성년자 등을 낚아 성폭행하는 등의 행위를 ‘노예사냥’이라 불렀는데 공범 중 코태가 피해여성에게 접근해 성폭행 등을 저지르는 행동대장 역할을 수행했고, 반지는 가상사설망(VPN) 등을 활용해 갓갓의 범죄 흔적이 수사망에 잡히지 않도록 했다. 이들은 갓갓이 n번방을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함께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갓갓이 잠적할 때 함께 사라졌다.

범죄자들의 갓갓 신격화

갓갓은 지난해 2월 n번방 권한을 공범들에게 넘기고 자취를 감췄다. 이후 신격화가 시작됐다. 최근 텔레그램 방에는 ‘갓갓도 못 잡는데 우리를 어떻게 잡겠냐’ ‘갓갓은 절대 못 잡을 듯’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앞서 국민일보는 갓갓이 n번방을 물려주면서 와치맨과 나눈 인터뷰 형식의 대화내용을 입수했다. 와치맨이 9개의 질문지를 미리 보내고 갓갓은 짧게 대답했다. 갓갓은 “왜 (n번방을) 하게 된 건가”라는 질문에 “일탈”이라고 답했다. 이전 다른 대화에서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고 답했었다.

갓갓에 따르면 피해자는 20명 정도, 입장권은 문화상품권 1만원에 팔았다. 수입은 70만원 정도였는데 노예에게 모두 나눠줬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있냐는 와치맨 질문에 갓갓은 “미안해. 이제 안할게”라고 답하면서도 “아직 연락하는 피해자가 있냐”는 추가 질문에 “있을 걸ㅋ”이라며 범행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갓갓은 수시로 경찰을 조롱했다. “나는 절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경찰을 비웃으며 철저하게 신분을 숨긴 갓갓을 보며 n번방 범죄자들은 환호했다. 그렇게 숭배받던 갓갓은 결국 ‘박사’ 조주빈 일당에 이어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n번방을 만난 순간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이 n번방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중순쯤이었다. 성착취물을 주고받는 사이트 ‘AV스눕’에 의문의 링크가 올라온 걸 발견했다. 텔레그램으로 연동되는 경로였다. 메인은 ‘와치맨’이 관리하는 ‘고담방’이었는데 그곳은 하나의 관문이었고 최종 목적지는 총 8개로 구성된 n번방이라고 했다. 창시자는 갓갓. 관전자들은 1번방에는 어떤 영상이 있고, 2번방에는 누구의 영상이 있다며 떠들어댔다.

지난해 7월 기준 고담방에는 2000명 정도 모여 있었다. 갓갓이 만든 n번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담방에서 인증을 거쳐야했다. 자신이 소유한 성착취물을 올리며 신임을 얻는 식이다. 혹시 모를 수사를 피하기 위해, 불청객을 막기 위해 그들이 만든 덫이다. 실제로 취재팀은 성희롱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번 강제퇴장을 당했다.

n번방 운영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고담방은 와치맨이, 여기서 파생된 인증방 4곳에도 각각 방장이 있었고, n번방은 갓갓의 공범 여럿이 나눠 관리했다. 오히려 취재팀은 방장이 여러 명이라 n번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각 방장은 기분에 따라 이벤트를 열며 n번방 티켓을 나눠줬는데, 공유할 만한 성착취물이 없던 취재팀은 5시간 만에 일본 애니메이션 여아 사진으로 프로필을 변경하고 입장할 수 있었다.

n번방에서 벌어진 일

차원이 달랐다. 그곳엔 갓갓의 ‘노예’들이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피해자도 많았다. 관전자들은 개처럼 짖고 있는 아이들, 자위하는 아이들,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들을 보며 키득거렸다. 협박을 받고 직접 촬영해 보내는 영상들이었다. 조종하고 있는 인물은 갓갓이었다.

n번방의 놀이는 온라인 성착취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여자아이가 숙박업소로 추정되는 방에 갇혀있었고, 이 방에 성인 남성이 들어가 아이를 강간했다. 영상이 공유되자 채팅방은 ‘이게 바로 그루밍이지’라는 환호로 떠들썩했다. 최근까지도 ‘몇번 방에 들어가면 그 영상 있음ㅋ’이라는 대화가 오고갔다.

각 방마다 노예는 3~4명이었고 합하면 20~30명 정도였다. 이 방에서는 “이정도 되면 누구 하나 죽는 애 나와야하는데 죽었다는 소리 못 들어봄ㅋ 한 명만 죽어도 본보기 오질텐데 경찰들은 매일 처놀기만 하고” 같은 조롱의 말들이 오갔다.

갓갓의 교활한 수법

갓갓은 경찰을 사칭해 노예를 만들었다. 범행은 주로 트위터에서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수위가 높은 게시물을 올린 미성년자를 선별한 뒤 ‘게시물 신고가 접수됐으니 보내준 링크에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조사에 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는 협박도 함께였다.

아이들은 무력했다. 신상정보를 순순히 넘겼고, 지옥의 문이 열렸다. 갓갓은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대답을 독촉하고, 숨 쉴 틈 없이 압박했다. ‘신원 확인을 해야 하니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가 전신사진, 가슴이 드러나는 사진, 상의 탈의 사진 등을 요구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이들이 멈칫하면 그 사이 신상정보로 알아낸 SNS 친구 목록을 캡처해 보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사색이 됐고 그렇게 노예가 됐다.

피해자들 역시 갓갓의 체포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절대 잡히지 않을 것 같던 n번방 창시자인 ‘그놈’을 잡았다는 소식이 피해자를 숨은 곳에서 끌어내 피해 회복의 첫발을 내딛는 용기를 주길 바란다.

특별취재팀 onlinenew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