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아야 한다며 폭행 참던 경비원…끝내 투신” 입주민 글

입력 2020-05-11 10:00
아파트 주차장 CCTV에 찍힌 경비아저씨와 입주민 B씨. 오른쪽 사진은 해당 아파트의 다른 입주민이 올린 글. YTN/네이트판 캡처

서울 강북구 소재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행과 괴롭힘으로 인해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 한 주민이 “착한 사람만 세상을 뜨는 비참한 현실에 아저씨의 억울함을 끝까지 밝히기로 했다”며 자세한 사건 정황을 공개했다.

해당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A씨는 10일 ‘네이트판’에 ‘오늘 새벽 경비아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제목처럼 오늘 자정 무렵 경비아저씨가 본인이 사시던 아파트 13층에서 투신했다”며 “지난달 말부터 한 입주민으로부터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것이 그 이유”라고 밝혔다.

A씨는 아저씨의 피해 사실을 지난 3일 오전 11시쯤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주차장에서 고함이 들려 가보니 경비아저씨는 다친 코를 손으로 잡고 있었고, 입주민 B씨는 경비아저씨에게 맞았다며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비아저씨는 “저 입주민이 이중 주차된 자기 차를 밀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 밀 수가 있느냐. 내 일을 했을 뿐인데 그때부터 계속 행패를 부리고 때렸다”며 하소연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 모두가 경비아저씨 편을 들었다고 했다. 모두 “저렇게 일 잘하고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때리느냐”고 입을 모았다는 것이다. A씨는 “제가 기억하는 아저씨는 입주민이 건물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멀리서도 모자를 벗으며 인사하고, 이중 주차된 차에 손대기가 무섭게 달려와 도와주시던, 제 40세 평생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을 만큼 순수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B씨가 ‘그만두지 않으면 파묻어버리겠다’고 폭언을 하거나 ‘상처 안 나게 때리겠다’며 폭행했을 때도 아저씨는 ‘죄송합니다. 제 새끼들과 먹고 살아야 하니 못 그만둡니다’하고 참으셨다는 말을 듣고 분노가 차올라 못 견딜 심정이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경비아저씨에게 전해 들은 내용이라며 “집중적인 폭행이 있었던 것은 지난달 27일”이라고 주장했다. B씨가 경비실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아저씨를 따라 들어와 문이 열리지 않게 몸으로 막은 뒤, 머리채를 잡고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당시 경비아저씨는 코뼈와 발가락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뇌진탕 증세까지 보였다.

A씨는 “아저씨의 억울함을 알게 된 뒤 여러 입주민이 산재 처리 등 아저씨의 편에 서서 함께했다”며 “그러나 아저씨는 지난 4일 협박에 가까운 B씨의 문자를 받은 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는지 자정이 넘은 시간 우리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찾아오셨다. 그때는 입주민 몇명이 말리고 급히 병원에 입원시켜 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병원에서 여러 군데를 치료받으며 B씨가 처벌받고, 본인은 다시 아파트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랐다. 용기를 붙드신 줄로만 알았는데, 병원에서 혼자 계신 밤에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고 했다.

A씨는 “혹시나 B씨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이라며 폭행 가해자를 향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때리기 전에 CCTV 사각지대를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당신이 연예계 종사자라는 것을 듣고 그것을 이용해 반격할까 생각도 했지만, 최소한의 양심에 맡겨보기로 했던 게 실수인 것 같다. 자수와 고인에 대한 사죄만이 당신이 살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