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직원들, 코로나 공포에 “출근하기 무섭다”

입력 2020-05-11 06:53 수정 2020-05-11 10:25
고위 당국자 “코로나19, 이미 백악관에 퍼져”
트럼프와 펜스 ‘떼어놓을’ 방안 없어 골머리
정기적 코로나 검사…검사장비 신뢰성에 의문
백악관서도 재택근무 확대…경호원들 마스크 써

해가 지는 시점에서 찍은 백악관 ‘웨스트윙(대통령과 고위 참모들의 근무동)’의 모습. AP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권력의 심장부 백악관을 뚫었다.

백악관 직원들이 코로나19의 공포로 출근하기를 무서워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부 고위 당국자들은 코로나19가 3층 건물인 백악관 ‘웨스트윙(대통령과 고위 참모들의 근무동)’의 좁은 사무실에 이미 빠르게 퍼져 있다고 믿는다고 NYT는 전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 선임보좌관은 이날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하러 가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백악관에서 마스크를 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싯 선임보좌관은 “(백악관은) 좁고 사람들로 혼잡한 공간”이라며 “나는 웨스트윙에 가는 것보다 집에 앉아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에서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군 고위 장성들, 그리고 백악관 국가안보팀 관계자들과 함께 회의를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AP뉴시스

하지만 해싯 선임보좌관은 “(출근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위험하다”면서도 “그러나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기여해야 하기 때문에는 (출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지난주 백악관 직원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패닉 상태에 빠졌다. 특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인 케이티 밀러의 확진 소식은 백악관을 충격에 빠뜨렸다. 나머지 한 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식사·음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파견 군인이었다.

특히 밀러 대변인은 백악관 내 ‘슈퍼 전파자’ 의심을 받고 있다. 밀러 대변인은 지난주 백악관에서 열렸던 코로나19 TF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앤소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 등 3명의 보건 당국 책임자들이 줄줄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백악관은 백악관 내부에조차 코로나19 공포가 퍼지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는 미국 경제 정상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을 떼어놓는 방안이 없는 것도 골칫거리다. 자칫 잘못하다간 대통령과 부통령 모두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정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접촉하는 일부 참모들도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 또 모든 백악관 직원들은 최소 일주일 한번은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

백악관은 직원들의 코로나19 검사에 애보트사의 ‘ID Now’라는 장비를 사용한다. 전기 오븐 크기의 이 장비는 5분에서 13분 사이에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의료진들은 이 장비가 양성을 음성으로, 틀린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백악관은 최근 몇 주 사이 검사 결과까지 여러 시간이 걸리는 다른 코로나19 검사 방식도 사용하고 있다.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출근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도 변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한 백악관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지시받고 있다.

대변인실의 일부 낮은 직급 직원들은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머무는 ‘이스트윙’의 직원들도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내부 노력도 펼쳐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의 직원들은 규칙상 지금 마스크를 쓰고 근무 중이라고 NYT는 전했다.

백악관은 또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백악관 방문객들은 들어가기 전 자신의 현재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 리스트에 답해야 한다.

그러나 백악관 내부에서 코로나19 공포를 없애기 위해선 마스크 쓰기를 기피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건 의식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