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방역과는 동떨어진 행보로 주목을 끌었던 벨라루스가 9일(현지시간) 수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끝내 강행했다.
벨라루스는 이날 옛 소련 국가 중 유일하게 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진행했다. 매년 대대적인 규모로 행사를 치러온 러시아조차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우려해 올해 행사를 전격 취소했지만, 벨라루스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조차 무시한 채 수도 민스크에서 예정대로 열병식을 강행했다.
수만명의 군중과 3000여명의 군인, 180여대의 군사 장비가 동원됐다. 군 제복을 차려입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정부 고위인사, 참전 노병과 함께 특별 단상에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BBC는 일부 고령의 참전 군인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전했다.
벨라루스에서는 10일까지 총 2만2052명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와 121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적은 피해가 아니지만 당국은 이렇다 할 방역대책 없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주민 이동제한 같은 봉쇄 조치는 물론이고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도 없다. 학교, 종교기관, 기업, 상점 등은 정상 운영 중이며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중단된 프로스포츠 경기도 계속되고 있다.
‘방역 역주행’의 배후에는 독재자 루카셴코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전 세계적 정신병이자 광란’으로 규정하며 이웃 국가들의 국경 폐쇄를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난했던 인물이다. 공식석상에서 “보드카를 매일 마셔 바이러스를 죽여야 한다” “농장에서 트랙터를 몰다보면 바이러스가 치유된다”는 등의 근거 없는 말들을 쏟아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루카셴코의 황당 행보는 오는 8월 대선을 앞두고 나온 계산된 노림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경우 자신의 6선 연임에 방해기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의도적으로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하루 빨리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풀어 경제를 정상화화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사한 모습이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퍼지고 있지만 벨라루스 내에서 루카셴코를 견제할 세력도 없다. 루카셴코가 1994년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에 오른 뒤 26년째 철권통치를 이어오면서 견제 세력은 씨가 말랐다. 110석 하원에는 야당 의원이 한 명도 없고 의회는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언론 자유 지수는 북한과 함께 세계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뉴욕타임스는 “루카셴코의 기행은 코로나19 전부터 있었다”며 “트럼프와 다른 점은 그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