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관심 속 막 올린 K리그, 노장+외인 활약 빛났다

입력 2020-05-10 16:24 수정 2020-05-11 12:51
전북 현대(왼쪽)과 수원 삼성 선수들이 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전 직전 텅 빈 경기장에서 서로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2020 프로축구 K리그 개막전. 빗줄기가 굵어지던 후반 37분 코너킥 찬스에서 골문 가까운 쪽에 있던 ‘베테랑’ 이동국(41)이 높이 뛰어올라 강력한 헤더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경기 흐름이 답답해져갈 찰나에 나온 이동국의 역대 세 번째(2012·2018·2020) 개막 축포였다. 이동국은 득점 즉시 엄지를 치켜든 오른손을 왼손 위에 올리는 수화 세리머니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희생한 의료진들에 존경을 표하는 ‘덕분에 챌린지’의 일환이었다.

코로나19 탓에 경기는 무관중으로 진행됐지만, 이 골 장면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팬들이 함께 환호했다. 전 세계 축구 리그가 멈춘 상황에서 K리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축구의 첫 개막을 알렸기 때문이다. K리그 중계권을 구매한 영국과 독일 호주 러시아 등 전 세계 36개국 팬들은 축구를 볼 수 없는 상실감을 먼 아시아 국가에서 펼쳐지는 ‘실제 축구’ 중계로 달랬다.

실제로 영국 BBC스포츠가 홈페이지에서 제공한 실시간 경기 스트리밍 서비스엔 수만 명의 축구팬이 몰려들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프로모션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한 개막전 트위터 생중계 누적 시청자 수는 10일 현재 339만 명에 육박한다. 이동국이 뛰었던 미들즈브러의 한 현지 팬은 12년 만에 이동국 유니폼을 꺼내 입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다. 호세 모라이스 전북 감독도 “포르투갈 방송국들이 개인적으로 중계권 관련해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며 고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스페인 마르카는 “이동국이 ‘코로나19 시대’의 첫 골을 넣었다”며 “그는 포옹이나 접촉 없이 ‘거리두기’를 존중하는 세리머니를 했다”고 전했다. 영국 더 선도 “우리도 올바른 계획에 따라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언젠가 축구를 즐길 수 있단 희망을 동아시아의 한 나라가 전해줬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K리그에 복귀한 양동현이 9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덕분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까지 진행된 K리그1 1라운드에선 전북,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등 지난 시즌 강팀들이 승리를 거두며 큰 이변 없이 마무리됐다. 그 중에서도 팀의 1대 0 진땀승을 이끈 이동국을 포함해 양동현(34) 이청용(32) 같은 노장들의 품격이 전세계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 J2리그에서 복귀한 성남 FC 양동현은 9일 광주 FC를 상대로 경기 시작 11분 만에 2골을 맹폭하며 김남일 감독에 데뷔전 승리를 안겼다. 포항 시절이던 2016~2017년 2년간 32골을 넣은 문전 앞 ‘킬러 본능’은 30대 중반이 돼도 여전했다. 상주 상무전을 통해 10년 9개월 20일 만에 K리그에 복귀한 이청용도 같은 날 울산의 4대 0 대승에 기여했다. 전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 다운 깔끔한 몸놀림으로 울산의 중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주니오가 9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득점한 뒤 코로나19에 신음하는 조국 브라질을 응원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외국인 선수들도 전 세계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현재 K리그엔 1·2부를 통틀어 전 세계 22개국에서 온 총 70명의 외인 선수들이 뛰고 있다. 수원의 캐나다 출신 장신 센터백 헨리(188㎝)는 단연 돋보였다. 팀은 아쉽게 패했지만 조규성-한교원-김보경 등 전북의 국가대표급 공격진들의 파상공세를 반 박자 빠른 판단으로 막아섰다. 마하지(호주)도 지난 시즌 15골 10도움으로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을 펼친 대구 FC 세징야를 꽁꽁 묶어내 강등 후보로 꼽혔던 인천 유나이티드에 귀중한 승점 1점을 선사했다. 울산 주니오(브라질)도 2골 1도움을 올리며 상주 문전을 초토화시켰다.

연맹 관계자는 “정부와 국민들의 방역에 대한 철저한 노력과 K리그 구성원·팬들의 인내가 밑바탕이 돼 자긍심을 느껴도 될 만한 전 세계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앞으로 K리그 중계권 판매 경로가 더 개척돼 광고가 붙고 부가적인 상업적 이익까지 낼 수 있을 거란 조심스런 기대도 하고 있다”고 1라운드를 치러낸 소감을 전했다.

이동환 기자, 전주=조효석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