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응원하는 팀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드디어 보여줄 수 있게 됐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오랜 기다림 끝에 프로축구 K리그1 개막전이 열린 지난 8일, 경기장소인 전주월드컵경기장 기자석에 이목을 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영국에서 건너온 K리그 팬 매튜 빈스(32), 피터 햄프셔(29)다. 둘은 이날 재외국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영방송 아리랑TV 해설을 맡아 경기를 중계했다. 매튜는 이날 개막전의 홈팀 전북 현대의 7년차 팬이다. 피터 역시 올 시즌 K리그2에서 승격한 광주 FC의 2년차 팬이다. 둘은 이날 경기를 취재한 뒤 다음날 광주로 건너가 광주와 성남FC의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오래간 기다려온 K리그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팬답게 들뜬 목소리였다. 피터는 “영국에서 날 가르쳤던 교수에게서 몇 시간 전에 어느 팀에 배팅을 해야 하냐고 연락이 왔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매튜는 “영국의 가족들이 내가 응원한다고 오랫동안 얘기해온 팀을 드디어 처음 보게 됐다며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제발 경기가 0대0으로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날 경기는 매튜의 응원팀 전북이 후반 결승골로 수원 삼성에 어렵게 1대0 신승을 거뒀다. 매튜가 좋아하는 선수인 이동국의 통렬한 헤딩골이었다.
두 사람은 다른 외국인 K리그 팬들과 함께 영문 K리그 전문 홈페이지 ‘K리그 유나이티드’(kleagueunited.com)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들은 K리그를 접할 또다른 외국인들에게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협조를 통한 현장 취재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글을 기고하는 외국인 K리그 팬은 15명 수준이다. 이들이 각 팀마다 작성한 분석글은 웬만한 국내 언론 분석에 못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다. 직접 진행한 각 구단의 선수들과 감독 인터뷰뿐만 아니라 매 라운드를 앞두고 진행하는 영어 팟캐스트도 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도 운영한다.
축구의 본고장 영국 잉글랜드에서 건너온만큼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각자의 지역팀을 응원해왔다. 잉글랜드 레스터에서 살다온 매튜는 맨체스터 출신인 할아버지를 따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의 팬으로 자랐다. 리즈 출신인 피터는 어릴 적부터 가족을 따라 현재 2부 챔피언십 소속의 반즐리FC 팬이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각자가 연고가 있는 지역 K리그 구단의 팬이다. 매튜의 경우는 실제로 전북 서포터즈인 ‘매드 그린 보이즈’ 회원으로 활동했던 경력까지 있다.
피터가 응원하는 광주는 다음날 승격 뒤 치른 첫경기에서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남에 0대2 패배를 당했다. 성남 골키퍼로 출전한 김영광은 피터가 광주 팬으로서 처음 지켜본 2019년 3월 K리그2 원정경기에서 상대편 서울 이랜드의 골키퍼였다. 피터는 “당시 광주가 2대0으로 이겼던 걸로 기억한다”고 씁쓸해했다. 이날 상대편 성남의 감독으로 데뷔전을 치른 김남일 감독은 매튜와 인연이 있다. 매튜는 “전북 팬으로서 봤던 첫경기인 2014년 9월 경남 FC전에서 김남일이 헤딩 결승골을 넣어 이겼다”고 기억했다. K리그 팬으로서 겪은 역사가 그들에게는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두 사람은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 끝에 K리그를 볼 수 있게 된 게 행운이라면서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K리그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매튜는 “K리그는 매우 가족친화적인 환경이다. 충분히 매력이 있는 리그”라면서 “한국의 국가대표팀 경기에는 수천수만명이 오는 걸로 안다. 대표팀이 잘하길 바란다면 자신의 지역팀 역시 응원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그는 “축구팀을 응원한다는 건 단순히 이기는 걸 즐기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속하는 것”면서 “이기는 것만이 경기를 즐기는 게 아니다. 지는 것 역시 즐길 줄 아는 게 축구팬”이라고 말했다.
전주=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