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VIEW] ‘코로나’ 덫에 걸린 트럼프…‘성폭력’ 늪에 빠진 바이든

입력 2020-05-09 06:54 수정 2020-05-09 07:32
트럼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 직면
4월 일자리 2050만개 줄어…실업률 14.7%
바이든, 27년 전 성폭력 의혹서 못 빠져나와
피해 주장 여성 “바이든, 대선 후보 사퇴하라”

올해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에서 맞불을 것이 확실시되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뉴시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맞붙을 것이 확실시되는 두 대선주자가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중 자신을 옥죄는 늪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후보가 대선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각각 다른 그물에 걸린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은 낮은 지지율 속에서 아등바등 싸우는 ‘도토리 키 재기’ 싸움을 펼치는 상황이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괴롭히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가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는 최악을 치닫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에 대한 미흡한 대처를 둘러싼 ‘코로나19 책임론’이 올해 대선의 최대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예약한 바이든 전 부통령은 27년 전의 성폭력 논란이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그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의혹의 불길은 더 번져만 가는 상황이다.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타라 리드는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대선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3월 1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직업 센터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실업 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AP뉴시스

코로나19 불길 안 잡히는데…최악의 실업률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한국시간으로 9일 오전 6시 기준으로 127만 9546명을 기록하고 있다. 사망자 수는 7만 6706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폭증세가 둔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확진자·사망자 수가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다.

설상가상으로 경제는 최악이다. 미국 노동부는 4월 비농업 일자리가 2050만개 줄었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실업률도 14.7%로 폭등했다.

전달인 3월의 실업률 4.4%와 비교하면 10.3% 포인트 치솟았다. 실업률은 월간 기준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이며, 일자리 감소는 대공황 이후 최대치다.

실제 체감 경기는 더 크게 붕괴됐다. 지난 3월 둘째 주부터 지난주까지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이 3350만명에 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사회적 분위기는 절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다. 코로나19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 외에도 약물·알코올 남용과 자살 등 간접적 원인으로 7만 5000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CNN방송은 보도했다.

미국 보건 단체인 ‘웰빙 트러스트’는 실업 위기와 경기 침체, 고립에 의한 스트레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막함으로 ‘절망의 죽음’이 급격히 늘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악의 실업률에 대해 “충분히 예견된 일이며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일자리들은 매우 빨리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조차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일자리)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현금 폭탄’과 이른 경제 정상화를 통해 탈출구를 찾고 있다.

코로나19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7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연방정부와 주(州)정부가 지급하는 실업수당을 합치면 일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 된다고 WSJ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빠른 경제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영업 재개를 서둘렀다가 그나마 잡힌 코로나19가 재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이 거세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43%∼49%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비난 목소리를 고려하면 그다지 낮은 지지율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 취임 초기보다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국정 지지율 변화 추이.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도 국정 지지율은 전체 재임 기간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극복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보다 낫다는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경쟁자인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성폭력 의혹에 발목이 잡혀 있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지 않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바이든 “사실 아니다” 부인…그래도 번져가는 성폭력 의혹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금 ‘보이지 않는 선거운동(invisible campaign)’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보이지 않는 적(invisible enemy)’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한 외출금지 때문에 델라웨어주 자택 지하실에서 온라인으로만 선거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바이든 입장에서도 코로나19로 답답한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상원의원이었던 1993년 봄에 바이든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타라 리드. AP뉴시스

그런 그의 목을 더 옥죄는 것은 성폭력 의혹이다. 바이든을 둘러싼 성폭력 의혹은 지난달 12일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촉발됐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27년 전 성폭력 의혹으로 대권의 꿈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빠졌다.

성폭력 의혹을 폭로한 여성은 타라 리드다. 리드는 1992년 12월부터 1993년 8월까지 당시 바이든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일했다.

리드는 1993년 봄, 바이든 전 부통령이 상원 건물 안에서 그를 벽에 몰아붙인 뒤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신체의 모든 곳을 만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이든 전 부통령이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다른 곳으로 갈까”라며 성관계를 암시하는 말을 했다고 NYT에 폭로했다.

바이든은 ‘무시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불길은 더욱 번져갔다. 바이든은 NYT 보도가 나온 지 19일 만인 지난 1일, 처음으로 직접 입을 열었다.

바이든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절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리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리드는 7일 공개된 언론인 메긴 켈리와의 동영상 인터뷰에서 “당신(바이든)과 나는 그곳에 있었다”면서 “당신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뛰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의 대선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리드는 그러면서 “나는 그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일한 맞상대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까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중도 하차하면서 바이든은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굳혔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의 드림팀이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성폭력 의혹과 코로나19로 인한 외출금지로 바이든의 지지율도 정체 상태다. NBC방송과 WSJ이 성폭력 의혹이 터지기 전인 지난 3월 11일∼13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52%의 지지율을 얻으며 43%에 그친 트럼프에 9% 포인트 차로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이후 바이든이 여전히 앞서긴 하지만 지지율 격차는 4∼6% 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올해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이 5개월 3주나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의미한 격차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