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얼려주세요” 50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인터뷰]

입력 2020-05-09 06:17
한형태 대표이사 제공

8일 어버이날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최초의 냉동 인간이 탄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초, 경기도 분당시에 사는 50대 남성은 돌아가신 80대 노모를 냉동 보존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말도 안된다” “책임질 수 있느냐”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던 ‘냉동 인간’의 탄생은 눈 앞에 펼쳐졌다. SF영화에나 등장할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번 사업은 장기(臟器) 해동연구개발 전문기업인 크리오아시아 측의 주도로 이뤄졌다. 이곳은 냉동 인간 사업 외에도 강아지 체세포 보관, MK 면역세포 치료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국민일보는 8일 크리오아시아 한형태 대표이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형태 대표이사 제공

“어머니를 냉동 보존해주세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한 대표는 50대 남성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남성은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는 어머니가 혈액암에 걸려 위중한 상태라고 했다.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80대 노모의 시신을 냉동 보존하고 싶다고, 자신이 무엇을 하면 되냐고 물었다. 그는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달 초, 한 대표는 두 번째 전화를 받았다. 앞서 연락을 준 50대 의뢰인이었다. 남성은 이전보다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의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셨어요. 지금 장례식 중입니다. 1년 전에 부탁했던 냉동 보존을 하고 싶습니다.”

한 대표에 따르면 냉동 보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고객이 상담 문의를 하면 가장 먼저 지정 병원을 소개한다. 사망선고를 받은 시신은 근처에 있는 제휴 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동된다. 이 때 시신은 인위적으로 뇌산소를 공급해주는 호흡기를 차고 있다. 장례식장 안치실에서는 시신의 혈액을 모두 빼내고 부동액(냉동보존액)을 채워 넣는다. 이렇게 준비된 시신은 항공편에 실려 러시아로 떠난다. 냉동 보존센터가 러시아에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발 항공편이 잡힐 때까지 해당 시신은 영하 20~30도 냉동실에서 보존된다.

한 대표는 “부동액을 넣으면 냉동으로 보존했을 때 세포들이 갖는 데미지(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시신의 외관은 생전과 똑같아진다. 이 상태로 냉동 보존하면 수 만년 동안 썩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러시아발 항공편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의뢰인과 한 대표는 수소문 끝에 물류항공편을 구했고 노모의 시신은 2주를 넘겨서야 러시아로 옮겨졌다. 국내 최초의 냉동 인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챔버 안에 시신 8구를 넣고…”

한 대표는 지난 2018년 2월 건국대 의학전문대학 김시윤 조교수와 함께 크리오아시아를 창업했다. 초반에는 줄기세포 보관업에 주력했지만 이미 많은 업체가 뛰어들어 시장은 레드오션이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고심하던 두 사람은 시신 냉동 보존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후 러시아 냉동 인간 업체 크리오너스와 제휴를 맺었고 현재는 냉동 보존과 해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러시아에서는 냉동 보존과 관련된 기업이 딱 한 곳 운영 중이다. 바로 코리오아시아와 제휴한 크리오너스다. 지금까지 크리오너스가 성공시킨 냉동 인간 사례는 모두 73건으로 러시아 자국민만 51명, 외국인은 22명이 냉동 보존돼있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등장한 냉동인간은 73번째 고객이었다. 크리오너스는 이외에도 일본, 이탈리아에 1곳씩 지사를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는 2개의 업체가 영업 중이다. 현재까지 냉동 보관된 시신은 200구 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미국 업체는 수치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현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에는 미국 업체의 지사가 한곳 운영되고 있다.

한형태 대표이사 제공

한 대표는 지난해 모스크바에 위치한 냉동 보존센터를 방문했다. 첫 느낌은 한적한 시골같았다. 하지만 시신을 냉동 보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했다. 건물 내부에는 빛이 한줌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대표는 “냉동인간이 되면 커다란 챔버 안에 들어가게 된다”며 “러시아의 경우 큰 용기에 시신 8구를 동시에 보관한다. 미국은 SF영화에 등장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한 챔버 안에 시신 한구가 들어있다. 챔버들이 줄지어서 쭉 나열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챔버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챔버의 경우 낮은 온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투명 유리로 제작하면 열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다. 다만 유가족은 언제든 챔버를 열 수 있다. 그러나 천으로 덮여 있어 시신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보거나 만질 수는 없다.

한 대표에 따르면 냉동 보존과 관련된 전체 비용은 약 1억500만원이다. 그는 “아무래도 러시아 업체에서 냉동보존을 진행하기 때문에 비용이 높다”며 “한국에 냉동 보존센터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냉동 보존 및 해동 연구가 미흡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죽음의 상실감을 채우고픈 사람들

그렇다면 1억원의 비용을 감수하고 냉동 보존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 대표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객은 40~50대 미혼이었다. 이들은 50년 이상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부모님과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상실감이 큰 것 같다”며 “미래 의료기술이 발달했을 때 손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문의도 많았다. 한 대표는 “삶이 너무 힘들다며 차라리 냉동인간이 되고 싶다는 전화도 있었다”며 “이건 명백한 살인이라 불가능하다. 그런 부분에서 업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현재 냉동 보존 연구 외에도 해동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해동 분야는 미국, 러시아 쪽에서도 많이 안하고 있는 연구사업”이라며 “최근에는 6개월 정도 냉동 보관한 신장이 이식 수술을 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테스트 중이다. 현재 미국 대학교와 제휴를 맺고 연구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 논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지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