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명 희생’ 스텔라데이지 침몰 3년 뒤에야…낡은 ‘똥배’ 퇴출

입력 2020-05-08 16:30 수정 2020-05-08 17:18
침몰 전 스텔라데이지호의 모습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에 가라앉은 지 3년이 훌쩍 지난 가운데 낡은 개조 초대형광탄선(VLOC)들이 해운시장에서 조기퇴출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섣부른 꼬리 자르기에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스텔라데이지호 시민·가족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브라질 발리(vale)는 최근 개조 VLOC 운항 선사들과의 계약을 조기에 종료하거나 수정한다고 밝혔다. 침몰·침수 등 예기치 못한 사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개조 VLOC와의 계약을 단계적으로 끝내겠다는 것이다. 발리는 침몰 직전 스텔라데이지호에 실린 철광석의 주인으로, 스텔라데이지호 운항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의 최대 거래처이기도 하다.

발리 측은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이후 스텔라유니콘호, 스텔라퀸호 등 동일한 구조의 쌍둥이 배들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안전에 의구심을 갖게 된 것으로 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는 낡고 녹슨 ‘똥배’에 화물을 싣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추측된다.

장기 화물 운송 계약이 종료되면 선사들은 높은 유지 관리비 때문에 노후선박을 운항하는 이점을 더는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개조 VLOC가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000일,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연합예배'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31일 브라질 구아이바 아일랜드 터미널에서 발리의 철광석 26만t을 싣고, 중국 칭다오로 향하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침몰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유조선에서 VLOC로 구조가 바뀐 선박으로 개조 이후 선체에 숱한 문제가 있었다는 증언이 그간 여러 차례 나왔다.

발리 측 발표에 발맞춰 국제 해운계도 개조 VLOC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선주들의 국제해운동맹인 발틱국제해운거래소(BIMCO)도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언급하며 개조 VLOC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BIMCO에 따르면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52척의 개조 VLOC가 운항됐지만, 지난 3년간 22척이 폐선하거나 9척은 운항하지 않아 현재는 20척만 바다 위를 오가는 실정이다. 3년이 지난 현재 5척 중 3척이 배로서 운명을 다한 것이다.

BIMCO 수석 해운애널리스트인 피터 샌드는 “비극적인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는 개조 VLOC의 안전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며 “앞으로 구식 VLOC는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신조 선박이 이를 대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고 사흘 째인 2017년 4월 2일 부산 중구에 있는 '폴라리스 쉬핑' 해사본부에서 실종된 한국 화물선 스텔라 데이지호 선원 가족이 애타게 구조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스텔라데이지호 시민·가족대책위원회는 이에 대해 개조 VLOC의 단계적 폐선이 꼬리 자르기에 그쳐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실종 선원인 허재용씨의 친누나인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이날 국민일보와 만나 “노후선박의 위험이 줄어든다고 해서 참사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이 위험한 개조 화물선의 안전을 제대로 관리 감독했다면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명확한 진상 규명을 통해 개조 화물선 운항을 승인해준 정부가 잘못을 저지른 선사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씨 등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22명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