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에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개적으로 증액을 압박해 11월 대선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한국과의 협상에서 성공한 뒤 추후 예정된 일본과의 방위비 협상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7일(현지시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의 대폭 증액 수용을 요구했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늘어난 방위비 분담금 액수에 합의했다고 언론에 공개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부자나라’를 보호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우리에게 상당한 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우방과 적에 의해 이용당해왔지만 이제 더이상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국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방위비 협상에서 양보하진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 측이 한국에 13억 달러(약 1조5900억원)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한미 협상단은 지난 3월 13%(약 1조1739억원) 인상안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갑자기 뒤집은 뒤 13억 달러를 ‘역제안’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무려 50% 가량 오른 액수다.
이 당국자는 13억 달러에 대해 “최종 제안”이라고도 말했다. 또 미국이 당초 50억 달러에서 13억달러로 요구를 낮춘 데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이 내렸다.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안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제임스 앤더슨 국방부 정책담당 부차관 지명자도 상원 인준청문회 서면답변을 통해 “한국에 더 크고 좀더 공평한 비용 분담을 짊어지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방위비 협상이 당사자들 간 비공개적으로 이뤄졌다면 지금 상황은 미국이 여론전까지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미 당국은 구체적인 금액에 관해서도 말을 아껴왔으나 증액 요구안을 밝히면서 한국과의 이견이 명확하다는 점도 공개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우방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공약에서 성과를 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이 최초 제시한 50억 달러가 400% 증액임을 고려할 때 협상단이 잠정 합의한 13%는 성과로 내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인 근로자 8600여명 중 절반에 육박하는 4000명 가량을 지난달 1일부터 강제로 무급휴직 시킨 것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미군 작전 수행과 직접 연관된 임무를 수행하는 근로자 2100여명 중 500여명 만이 무급 휴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위축된 상황에서 정상적 작전수행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 한국인 근로자들의 무급휴직이 길어지면 미국에 대한 한국의 감정이 더 나빠질 수 있다.
한국과 13억 달러에 대해 합의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선뜻 믿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 정부는 잠정합의안 수준에서 더 부담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단순히 한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방위비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도 “한국이 비용을 훨씬 더 많이 내기로 합의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