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억2000만명을 끌어모으며 ‘세계 4대 뮤지컬’로 자리매김한 ‘레미제라블’이 돌아왔다. 라이선스 공연은 아니다. 2012년 겨울 59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동명 영화의 재개봉도 아니다. 지난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16주간 전 좌석을 매진시켰던 화제의 ‘레미제라블’ 공연 실황을 영화관에서 선보이는 이 작품은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 오는 13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배우와 오케스트라 65여명의 웅장한 하모니를 166분간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사랑과 용서, 구원과 희망의 울림과 함께.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과 연극으로, 또 영화로 끊임없이 각색되며 사랑받았다. 한국에서는 2012년 한국어로 초연됐었는데, 2015년 재연까지 합쳐 누적 관객 수 66만명을 기록한 바 있다. 강한 자에게는 자비롭고, 약한 자에게는 되레 잔인한 법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힌 장발장. 그가 미리엘 주교를 만나 아카페적 사랑을 깨닫고, 그런 그의 실천이 민중을 위한 혁명과 포개지는 이 대서사시에는 만인이 공감할 메시지가 스며있다.
이 공연을 제작한 뮤지컬 분야의 ‘미다스 손’ 카메론 매킨토시는 출연진을 두고 “내 인생 최고의 공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마이클 볼(자베르 경감 역), 알피 보(장발장 역) 등 뮤지컬 ‘레미제라블’ 역사의 전설적 배우들은 물론 어린 코제트, 가브로슈 역의 배우들까지 빈틈없는 연기를 펼치며 관객을 단숨에 빨아들인다. 시선을 붙드는 건 이들과 수십명의 배우들이 무대 위로 펼쳐놓는 뮤지컬 넘버들이다.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Do You Hear The People Sing)’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노래들이 귀를 즐겁게 한다. 166분간 모든 대사가 음악으로 펼쳐지는데, 잔잔하다가 이내 웅장해지는 곡의 배열도 작품에 생생함을 더한다.
웨스트엔드의 현장감과 오리지널 작품의 깊이를 스크린을 통해 즐길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오페라나 발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공연을 국내 영화관에서 종종 선보였던 것과 달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빌리 엘리어트’ ‘미스 사이공’ 등 실황은 간간이 기획전이 있을 때만 만나볼 수 있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영국 국립극장의 ‘NT라이브’ 콘텐츠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해 많은 해외 예술기관(단체)가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내보내고 있지만, 언어장벽이나 스크린 크기의 한계로 제대로 즐기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는 자막에 직역과 의역을 적절히 섞어 극 이해를 돕는다. 공연 전막을 그저 풀샷으로 찍은 성의 없는 영상도 아니다. 제임스 파우웰, 장 피에르 감독이 따로 붙어 공연 영상을 다듬었다. 카메라는 무대 정면과 측면, 아래와 위를 오가며 현장의 분위기를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다. 다만 민중들이 정부군과 벌이는 시가전 당시 총성을 구현한 핀 조명 등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거나, 공연 전체를 두루 살필 수 없어 답답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
‘레미제라블’ 원작의 매력은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같은 인간사의 염원을 깊고 담대하게 풀어내는 데 있을 테다. 음악과 무대 구현에 힘을 쏟는 뮤지컬은 연극 등 다른 콘텐츠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스토리텔링이 빈약할 위험성도 있지만,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원작에서 많은 장면을 삭제했지만, 효과적으로 다듬었다는 인상을 준다. 인간적 논리인 법과 규율의 상징인 자베르 경감과 신의 대변자로서 분별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장발장의 대조가 선명하다. 공화주의자들과 민중의 혁명을 장발장의 얘기와 번갈아 진행하면서 극 말미 사랑과 구원에 관한 깊은 감동을 준다.
인터미션 없이 166분을 앉아있어야 하는 체력전이다. 다만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를 만나 개화하는 과정 등에서 엿보이는 속도감 넘치는 서사 전개가 이런 부담을 중화해준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