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추진 제동 걸린 ‘한국판 뉴딜’…시작부터 휘청

입력 2020-05-07 17:21
정부, 2차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 통해 구상 확정
비대면 산업 육성 등 3대 분야 10개 과제 선정

대통령·부총리 강조해 온 ‘원격의료’는 대폭 축소
대기업 지원 우려에 디지털 인프라 구축 구상도 ‘흔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한국판 뉴딜’ 구상이 시작부터 덜컹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기반인 디지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첫 삽을 뜨기도 전에 파열음이 들린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주목을 받은 ‘원격의료’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게 엊그제인데 벌써부터 ‘시범 사업’ 수준으로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대기업에만 유리하다는 예단도 과감한 정책 추진을 가로막는 요소다. 자칫하면 수사로 끝난 과거 정부의 ‘창조경제’와 같은 유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한국판 뉴딜’의 청사진을 확정했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를 3대 축으로 꼽았다. 이를 토대로 5G(5세대 이동통신) 인프라 조기 구축, 비대면 서비스 확산 기반 조성 등 10대 과제를 제시했다. 전통적 제조업이 아닌 ICT가 기반인 분야들로만 과제를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세부 내역은 다음달 공개하기로 했다. 회의 결과 브리핑에 나선 김용범 기획재재부 1차관은 “2~3년 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큰 그림만 제시한 상태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원격의료의 육성은 이번 과제에서 사실상 빠진다. 원격의료는 논의 과정에서 기존의 시범 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섬마을 등 의료 취약지역과 거동 취약자를 위해 진행하는 시범 사업을 좀 더 늘리겠다는 뜻이다. 김 차관은 “한국형 뉴딜에서 비대면 관련 의료는 시범사업 대상 확대와 시범사업 인프라 보강하는 내용에 국한한다. 원격의료의 제도화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1차 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원격의료 등의 규제혁파·산업육성에 각별히 정책적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힌 지 8일 만에 뒷걸음질을 쳤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란 큰 틀도 위협을 받고 있다. 기반이 되는 5G나 AI와 같은 분야를 선도하는 곳이 대기업 위주라는 문제제기가 발목을 잡는다. ‘과감’ ‘속도감’을 강조했지만 지원 대상 면에서 대·중소기업이라는 피아 구분에 시간을 뺏기면 대책 추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김 차관은 “페이스북·아마존 등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더 커지는 현상을 유념하고 있다. 양극화가 반복되지 않도록 유념하면서 대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