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진흙탕 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진주만 공습’과 ‘9·11 테러’에 빗대 “코로나19는 미국에 대한 최악의 공격”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중국 책임론’에 대해 “노골적인 정치적 협박이자, 인류 방역 역사의 추태”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 내 7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최악의 공격”이라며 “이는 진주만보다 더 나쁘다. 세계무역센터보다 더 나쁘다”고 대중국 공세를 이어갔다.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2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등 동시다발적 9·11 테러로 3000명 가량이 희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와 같은 공격은 결코 없었다.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중국에서 멈췄을 수도 있었고, ‘원천’에서 멈춰졌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또 중국의 1단계 무역 합의 이행과 관련해 “중국이 의무를 이행하는지 1~2주 이내에 보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이 무역 합의를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우한연구소에서 발원했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는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고 싶다”며 코로나 유래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언론 브리핑에서 우한연구소 발원설과 관련 “상당한 증거가 있다”며 대중 압박을 이어갔다. 그는 앞서 지난 주말에도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실에서 발원했다는 ‘거대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도 현재 미·중 관계를 ‘실망과 좌절의 관계’라고 표현하며 중국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숨겼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중국 책임론 공세에 중국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7일 종성 칼럼을 통해 “미국 정부의 중국책임론은 노골적인 정치적 공갈이자, 인류 방역 역사의 추태”라고 비난했다.
인민일보는 “전염병 상황에서는 전력을 다해 방역을 하고 분초를 다퉈 환자를 치료하는 게 중요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거짓말이나 공갈, 협박을 줄여야 한다”며 “책임은 전가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정치인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통보한 뒤에도 ‘모든 게 문제가 없다’ ‘증상이 매우 가벼워 자연 치유될 것’이라며 검사도 하지 않았다”며 “그래놓고 대중의 분노가 확산되자 중국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미국의 정치인들은 ‘중국이 코로나19 정보를 숨겼다’ ‘바이러스가 우한의 한 실험실에서 나왔다’는 식으로 계속 헛소문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담딘 척트바타르 몽골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결과 협력, 결의”라면서 “이와 반대되는 어떠한 언행도 적절하지 않으며 전염병을 정치화하거나 바이러스에 꼬리표를 다는 행위는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우한연구소 발원설’에 대해 “그는 아무런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며 “거의 모든 정상급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연에서 발생한 것으로, 실험실에서 누출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WHO는 코로나19의 우한연구소 발원설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가우 덴 갈 레아 WHO 중국 주재 대표는 최근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현재 확보된 모든 증거로 볼 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연에서 발원했고 인위적으로 조종되거나 합성된 흔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WHO는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동물 기원 연구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며 과학적인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