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인 K는 가끔 숨을 쉬기 힘들며 답답하여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든다고 하였다. 내과적인 모든 검사를 반복적으로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공황장애’라는 진단도 받고 치료도 했으나 나아지질 않았다.
‘공황장애와 다른 점은 어떤 특정 상황(엄마와 떨어져야 하거나, 혼자 있어야 하거나)에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K의 외할머니는 딸에게 너무 집착하는 스타일로 K의 엄마를 결혼시킨 이후에도 사사건건 간섭하였다. 엄마도 친정어머니에게 의지하였다. 이런 의존적인 아내가 남편은 못마땅했다. 자신에게도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둘 사이는 점점 냉랭해졌다. 그러던 차에 K가 태어났다.
아내는 아이에 집중하면서, 남편은 회사 일에 집중했고, 서로에 대한 불만이 묻히는 듯 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족처럼 보였지만 부모는 서로에게 무관심하였다. K와 엄마는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었다. K가 숨을 쉬기 힘들어 한 일이 있은 후로 잠시라도 엄마의 눈에 K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 숨을 못 쉬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K의 엄마는 K가 어려서부터 기질적으로 징징거리며 많이 매달리는 아이였다고 하였지만 아이의 기질 때문은 아닌 듯했다.
아빠는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천천히 호흡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쳐 줬다. 엄마 대신 도움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아이와 친밀감이 부족했던 아빠는 아이의 도움 요구에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자신 없었다. 어색해하며 지시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차츰 따뜻하게 위로하고 안심시켜 주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와 놀이도 하고 대화하는 시간도 늘렸다. 아이와 아빠가 이런 시간을 갖는 동안 엄마는 거리를 두고 관찰만 하도록 하였다.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K가 엄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는 딸과의 관계에 경계선을 두고 개입을 멈추고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딸에게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자신이 어떻게 딸에게 거리를 둘 수 있는 지를 딸과 남편을 지켜보면서 깨달아 갔다.
K는 차츰 비닐봉지가 부모를 대신해 숨을 쉬게 해준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비닐봉지를 사용해서 호흡을 조절해 갔다. 나중엔 비닐봉지에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편안한 호흡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K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엄마에게 ‘매달리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멀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엄마의 도움을 계속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K만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도 계속 K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그녀에게 그러했듯이.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가 아이가 ‘매달리는 대상’으로 대치되었고 차츰 아이는 엄마나 아빠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독립하고 자립하게 된 것이다. K의 부모가 차츰 K에게 경계를 만들고 공간을 주었을 때 K는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 나갈 수 있었던 거다. 재발하지 않으려면 부모가 부부간의 친밀감을 회복해야 한다. 먼저 부부는 아이를 빼고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아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인 증상’을 호소할 때 부모는 이에 대해 담담하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 대부분은 증상의 ‘신체의 병’이 아닌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함으로써 두려움을 떨쳐 내고, 서로의 마음에 작용하고 있는 마음의 역동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