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힘”…땀냄새 나는 생활글 ‘작은책’ 300호 발행

입력 2020-05-07 12:11
월간 ‘작은책’ 발행인인 안건모씨. 그는 “지금까지 ‘작은책’에 실린 글들에는 서민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작은책' 제공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

1995년 5월 1일 월간 ‘작은책’은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호를 발행했다.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자나 매일 가사에 시달리는 주부의 글을 싣겠다는 선언이었다. 실제로 이들 노동자나 주부는 ‘작은책’의 필자이자 독자로 이 잡지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었다. ‘작은책’은 이들의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생활글’을 묶어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고, 지난 1일 드디어 지령 300호를 맞았다.

‘작은책’ 발행인인 안건모(62)씨는 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300호를 발행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이어 “과거 ‘작은책’에 실린 글들을 다시 봤는데 지금의 글과 크게 차이가 없더라”며 “여전히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일 발행된 300번째 '작은책'. '작은책' 제공

알려졌다시피 잡지 시장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유명 잡지가 폐간되거나 휴간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게 한국의 잡지 시장이다. 하지만 ‘작은책’은 25년을 살아남았다. 현재도 정기 구독자가 5000명에 달한다. 어떻게 ‘작은책’은 살아남았을까. 안씨는 ‘생존 비결’을 묻는 말에 ‘작은책’이 견지하는 독특한 시스템부터 설명했다.

“‘작은책’은 전국 서점에 배포되는 잡지가 아니에요. 주로 독자들이 구독을 신청하면 집으로 배달해주는 방식으로 잡지를 펴내고 있어요. 서점에 납품하면 안 팔린 잡지가 반품되고,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제작비를 아끼고 있는 거죠.”

론 이런 시스템만으로 ‘작은책’의 장수 비결을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안씨는 “좋은 글의 핵심은 ‘공감’일 것”이라며 “‘작은 책’에는 ‘이건 내 얘기다’ 싶은 글이 넘쳐난다”고 전했다. 이어 “잡지에 실린 글을 보고 귀농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며 “용기와 위로를 선사하는 공감의 ‘생활글’이 많았던 게 ‘작은책’을 지탱한 힘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작은책’은 창간 25주년과 지령 300호를 기념해 단행본 ‘서로 안고 크니까 그렇지’와 ‘이만하면 잘살고 있는 걸까?’도 출간했다. 각각 2010~2014년, 2015~2019년 ‘작은책’에 실린 글들 가운데 반응이 좋았던 에세이를 추려 엮은 것들이다. 이들 책에는 마트 노동자나 도시가스 점검원 등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전하는 글들이 실려 있다.

‘작은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묻자 안씨는 “지금 가장 힘든 이는 대기업 노동자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가 될 듯하다”고 답했다.

안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마친 뒤 과거 기사를 검색하니 ‘작은책’ 창간호에 실린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의 글이 눈에 띄었다.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말, 그 말이 진짜 우리말이다. 우리말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글을 쓸 것이다. 글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세상이니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