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부가 대학 내 성폭력 규정을 개정하면서 가해자의 권리를 확대하고 학교 측의 법적 책임을 축소해 논란이다.
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벳시 디보스 교육부 장관은 기존 규정이 가해자로 고발된 학생의 권리를 학교가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고 비판해왔다.
이날 발표된 새로운 규정은 성폭력을 “너무나 심각하고 만연하며 객관적으로 공격적인 위법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학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로 좁게 정의했다. 성폭력의 범위에는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스토킹이 포함됐다.
반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만들어진 기존 규정은 “피해자가 학교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행동”을 성폭력의 범주로 간주했다. 규정에는 “행동이나 말 등 원하지 않는 성적 접근, 성적 호의 요청, 언어적·비언어적·육체적인 성적 행위” 등이 포함됐다.
새로운 규정은 학교에 정식으로 신고가 접수된 사건만 조사하도록 하고 학교 밖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규정이 학교 밖에서 벌어지거나 학교에 직접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사건이더라도 학교가 인지해 조사하도록 한 것과 대비된다.
또 새로운 규정은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 모두 학교가 모은 증거에 접근할 수 있고 변호사 등 조력자와 함께 조사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학내 징계 청문회 중계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이 대표자를 통해 상대방에게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미국에서는 피해자가 성폭력 트라우마를 다시 겪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규정은 오는 8월 14일부터 시행된다. 디보스 장관은 “오늘 우리가 발표한 최종 규정은 공정성, 무죄 추정, 적법한 절차라는 핵심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도 성폭력과의 전쟁을 이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모든 학생이 성차별 없는 교육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역사적인 단계를 밟는다”고 자평했다.
바비 스콧 하원 교육위원회 의장은 “교육부의 의도는 가해자에 대한 적법한 절차를 확보하는 것이었다”면서도 “그러나 이 규정은 실제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보호와 학교의 책임감을 약화하며 구제를 원하는 피해자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민주당과 교육 단체는 디보스 장관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학이 새로운 규정에 대비할 시간이 없다”며 “사태가 잠잠해진 이후 규정을 개정하라”고 요청해왔으나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성단체들은 새로운 규정의 내용과 함께 발표 시점을 문제 삼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미국 국립여성법률센터의 고스 그레이브스 회장은 “우리는 학내 강간과 괴롭힘이 무시당하고 은폐되던 시대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며 “교육에서의 성차별 금지 법률이 ‘모든 학생’이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성공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랑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