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조 경영 종식’ 선언한 이재용…엇갈린 반응들

입력 2020-05-06 18:08 수정 2020-05-06 20:32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창립 이후 82년 간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을 종식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재계와 노동단체는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재계에선 그룹 오너가 직접 의사를 밝힌 만큼 향후 삼성 내 노조 가입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봤다. 반면 노동·시민단체는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추상적인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6일 재계와 노동단체 등에 따르면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에 따른 피해는 2011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진윤석 한국노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2011년 이전엔 1사 1노조 방침에 맞춰 회사 측에서 유령 노조를 만들어 다른 노조 설립을 막았다”며 “그런데 복수노조가 법적으로 허용된 후 여러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자 직원들을 협박, 회유하거나 해고까지 하면서 설립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대표적인 노조 탄압 사례는 ‘삼성전자서비스·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건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두 건을 언급하며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법은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 등 삼성 고위 임원들이 계열사의 노조 운영에 개입하고 노조 와해를 시도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마련한 계획을 토대로 노조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등 불이익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 내 노조 설립 움직임은 2011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에서 시작됐지만 회사 측의 이런 방해 공작으로 다른 계열사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서야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 등으로 확산됐다.

재계는 이 부회장의 발언으로 조만간 삼성이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는 등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한국노총 산하 삼성 노조들은 임금 및 단체협상을 진행 중이거나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임원들의 실형 선고 전후 이미 삼성 내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지기도 했고 이번에 오너가 직접 사과에 나선 만큼 변화 의지가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에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없어 실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미 80년간 회사 내 ‘반(反)노조’ 분위기가 정착돼 직원들은 노조 가입 자체를 꺼린다”며 “이 부회장이 진정성이 있다면 그간의 노조 탄압 실체를 투명하게 공개하거나 노조 가입 독려, 해고자 복직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임단협 교섭에도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날 332일째 고공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는 “이 부회장은 정작 피해자 본인에겐 직접 사과하지 않았고 해결방안도 내놓지 않았다”며 단식을 선언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오늘 이 부회장이 밝힌 건 원칙 수준이고 7일 열릴 삼성 준법위 회의에선 노조 활동 보장 관련 보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