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제주 화재’ 처음 알린 건 아랫집 공기청정기

입력 2020-05-06 18:01 수정 2020-05-06 21:44

어린이날 일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 빌라 화재를 처음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아랫집의 ‘공기청정기’였다.

서귀포소방서와 경찰에 따르면 어린이날인 5일 새벽 불이 난 제주 서귀포시 서호동의 한 빌라 1층에 살던 주민은 거실에 틀어 둔 공기청정기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

3층에서 시작된 연기가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빌라 전체로 퍼지자 공기 질에 이상을 감지한 공기청정기가 순환 기능을 강하게 작동하며 집주인을 깨운 것이다.

연기를 본 주민은 즉시 119에 신고했다. 그러나 화재 접수 후 소방당국이 도착했을 당시에도 불길은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빌라 건물 1~4층 전체에 연기와 냄새가 퍼졌지만 불길이 치솟지 않아 어느 집에서 불이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신고한 주민과 소방관은 빌라에 사는 집들에 모두 연락을 취했다. 그 결과 한 집에서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3층 현관문을 뜯고 들어가 안방에서 자고 있던 일가족 4명을 발견했다.

이번 화재는 어린이날 새벽 3시 52분경 최초 신고됐다. 불은 집 천장 등을 태운 뒤 40여 분 만에 진화됐지만 집 안에 있던 30대 부부와 3, 4세 딸 등 일가족 4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고, 차례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소방당국은 화재 당시 외부와 연결된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 산소가 차단되면서 불길이 크게 일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내부 방문은 모두 열려 있어 연기가 쉽게 가족을 덮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발견 당시 의식이 없었으며, 모두 직접 불길이 아닌 열에 의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6일 경찰은 일가족 4명의 사망원인이 일산화탄소 등 유독가스에 의한 화재사라는 1차 부검 소견을 내놨다.

서귀포경찰서는 부검 결과 이들 가족의 기도와 폐에서 유독가스 흔적이 확인되는 등 전형적인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외상 등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약물 복용 여부 등을 포함한 최종 감정 결과는 열흘 정도 뒤에 나올 예정이다.

경찰은 1차 감식 결과 불이 집 내부 주방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수거한 냄비와 가스레인지, 후드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식을 의뢰한 상태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