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의 성지로 불리는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6월 13일~9월 5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5일(현지시간) 1년 연기를 발표했다. 그동안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길 기대하며 개최 여부를 놓고 버티던 아레나 디 베로나도 결국 연기를 결정한 것이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눈치만 보던 여타 여름 공연예술축제들도 속속 연기나 취소를 발표할 전망이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세실리아 가스디아 아레나 디 베로나 예술감독은 이날 “축제를 1년 미룬 뒤 올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내년에 치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축제는 시그니처 공연인 ‘아이다’를 비롯해 ‘나부코’ ‘라 트라비아타’ 등의 오페라와 콘서트 ‘베토벤 교향곡 9번’ 등으로 꾸려진다.
2만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고대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열리는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은 매년 여름 수십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으로 유명하다. 축제 연기를 발표하긴 했지만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아예 공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레나 디 베로나 측은 ‘음악 속에서(In the heart of music)’라는 타이틀 아래 8~9월 주말에 플라시도 도밍고, 마르첼로 알바레즈, 안나 네트렙코, 레오 누치, 소냐 욘체바 등 스타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콘서트 10편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관객 수용 인원은 1만3500명에서 3000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가스디아 감독은 해당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지금으로부터 향후 3개월에 걸쳐 상황이 변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축제 연기로 발생할 경제적 손실은 지역 경제로만 한정을 짓더라도 약 2000만 유로(약 26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레나 디 베로나 측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의 축제들이 속속 취소를 발표하는 와중에도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축제 취소에 따른 피해를 고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 사망자가 이날 기준 3만명에 육박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더는 버티기 어렵게 됐다.
유럽 여름 공연예술축제의 대장 격인 아레나 디 베로나의 이번 연기 결정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던 축제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6월 22일~8월 1일),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7월 22일~8월 23일), 영국 BBC프롬스(매년 7~9월), 이탈리아 마체라타 페스티벌(7월 17일~8월 9일) 등이 개최 여부 결정을 유예 중이다. 특히 올해 100주년을 맞아 프로그램 규모를 키웠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7월 18일~8월 30일)의 경우 고심이 깊은 상태다.
“5월 말에 세부 프로그램을 발표하겠다”는 BBC프롬스를 비롯해 결정을 보류한 축제들 모두 이달 말까지 버텨보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공연계 안팎에서는 수십명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 되는 데다 무대 설치 및 리허설에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한 공연예술의 특성상 이미 올 여름에 축제를 열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겼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축제를 연다고 해도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관객이 올지도 미지수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