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진 아프리카 국가들이 해외에서 빌린 채무에 대한 상환 완화를 호소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로 세계 각국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면서 ‘부채 외교’라는 비판을 받았던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부채 탕감’을 해줄지 주목된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유가가 폭락하면서 앙골라, 나이지리아, 콩고, 적도기니, 남수단 등 아프리카 원유 생산국들이 큰 타격을 받았고, 세이셸, 모리셔스 등 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도 심각한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잠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등도 세계적인 상품 수요 감소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심각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에게 440억 달러의 채무 탕감을 포함, 1000억 달러 규모의 부채 상환 경감을 요청했다. 세계은행은 2018년 기준 아프리카 국가들이 해외 대출기관에서 빌린 채무가 총 5843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개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25개국에 5억 달러 규모의 채무 상환을 6개월간 정지시켰고, G20도 이달 중순 저소득 국가들에 대한 대출 상환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데다 방역을 위한 의료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채권국들에게 채무 상환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각국이 봉쇄와 통행금지, 국경폐쇄 등을 강행하면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경제성장률이 50년만의 최악인 1.6%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전체 채무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이 채무 탕감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미 존스홉킨스대학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은 49개국 아프리카 정부와 국영기업들에 1430억 달러 이상을 빌려줬다.
케냐 나이로비 주재 중국 대사관은 지난달 16일 “중국은 G20의 채무 구제 합의에 따라 최빈국들이 전염병 퇴치와 경제 사회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원론적인 언급을 했다.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의 쑨윈 연구원은 “중국이 채무 면제 등 완전한 구제보다는 대출상환 연기, 채무 재조정, 부채·지분 교환 등의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아공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지브란 퀴레이시는 “중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에 부채 탕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희망섞인 전망을 했다.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일대일로 구상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고속도로와 철도, 항구, 댐 등을 건설했다. 서방 국가들은 중국이 저개발국가들을 부채의 덫에 빠지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앙골라의 경우 대 중국 채무가 431억5000만 달러로 아프리카 전체 대중 채무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석유 부국인 앙골라는 전체 원유 생산량의 3분의 2를 중국에 수출해 부채를 갚고 있지만, 원유 판매 가격이 낮아 부채 규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80억 달러였던 앙골라의 대외채무는 올해 854억 달러로 오히려 늘어날 전망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138억 달러), 케냐(89억달러), 잠비아(86억 달러), 수단(65억 달러) 등이 중국의 부채를 안고 있다.
중국은 2018년 카메룬(7800만 달러), 보츠와나(720만 달러), 레소토(1060만 달러) 등에 부채를 탕감해 주고, 콩고 등에 부채 조정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탕감해준 부채 규모는 아프리카의 대중국 미상환 부채의 5%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의 브래들리 팍스 교수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중국 채무 대부분은 중국 수출입은행과 중국 개발은행, 국영 상업은행 등 이른바 정책은행의 대출과 관련이 있다”며 “이들 은행은 이자를 붙여 받는 데 목적이 있어 사례별로 상환조건 완화 등은 고려하겠지만 채무 면제는 결코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