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에서 한 달여 뒤인 다음 달 1일부터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현재의 8배, 사망자는 2배 가까이 불어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됐다. 경제 재개를 위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섣부른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전염병 재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관측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작성한 내부보고서에 6월 1일부터 신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20만명씩, 사망자는 대략 3000명씩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2만5000명선, 사망자는 1750명선이다. CDC는 보고서에서 “여전히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지역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5대호 주변, 캘리포니아 남부, 미국 남동부와 북동부 지역이 새로운 코로나19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 작성 날짜는 명시돼 있지 않은 상태이나 지난달 30일 카운티별 코로나19 상황이 담긴 지도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작성된 문건이라는 의미다. NYT는 이 보고서에 대해 “미국이 경제 활동을 재개하면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차원의 공식 자료가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저드 디어 부대변인은 “백악관 코로나19 TF에 보고되지도, 관계 부처 사이 분석을 거친 자료도 아니다”며 “미국을 다시 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단계적 가이드라인은 연방정부 내 최고 보건·감염병 전문가들의 동의를 거친 과학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워싱턴대학교 보건계량분석평가연구소도 이날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규모를 과거에 내놓았던 예측치보다 2배 가량 높여 발표했다. 해당 연구소는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자주 인용됐던 곳이다. 연구소는 지난달 17일 발표한 사망자 추계 모델에서 5월 말까지 완벽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질 경우 8월 초까지 6만415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새 추계 모델에서는 예측치가 13만4475명으로 크게 늘었다. 불과 3주도 안돼 예측치가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연구소 측은 추계 모델 개정 이유에 대해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이동이 증가하고 있고, 오는 11일 31개 주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완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점을 반영했다”며 “사람들 사이 접촉이 늘어나면 바이러스 전파가 촉진된다”고 설명했다.
‘신속한 경제 재개’로만 기울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5월 한 달 동안 백악관 코로나19 TF 인사 등의 의회 증언을 사실상 금지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NYT가 입수한 이메일에 따르면 백악관은 코로나19 TF 관계자들이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승인 없이는 의회에 출석하지 못하도록 막는 지침을 내렸다. 국무부와 보건복지부, 국토안보부 등 코로나19 관련 1차 대응부서 소속 공무원들도 5월 하원 청문회 중 단 4개만 출석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기로 했다.
백악관 측은 코로나19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나 실상은 보건 및 과학 분야 소신파 인사들의 ‘입’을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의 냉철한 전망이 경제 재개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CNN 인터뷰에서 해당 지침과 관련해 “우리는 끝까지 진실을 추구할 것이고, 그들은 진실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