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맥킨토시가 영국과 미국 등 유명 공연장이 내년 초까지는 공연을 재개하기 힘들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는 상황에서 극장이 문을 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맥킨토시는 3일(현지시간) BBC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웨스트엔드와 미국의 브로드웨이 극장은 내년 초까지 공연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청중과 배우 및 스태프들이 안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주 안에 상황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공연 재개 시점은 늦어질 수 밖에 없다”며 “올해 하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내년 초 쯤에나 무대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매킨토시는 뮤지컬계의 ‘빅4’로 불리는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을 제작한 거물 프로듀서로 공연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그의 이날 발언은 최근 영국 공연계가 공연 중단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호소하며 정부에 긴급 구제 금융을 요청한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공연은 감염병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재개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공연은 반드시 재개된다. 다만 그 전에 정부의 구제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산업 전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공연계 인사는 매킨토시만이 아니다. 영국의 유명 극작가 제임스 그레이엄은 “공격적인 정부의 구제 대책이 필요하다”며 “공연 시장의 자금은 곧 씨가 마를 것이다. 곧장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됐을 때, 우리가 공연을 다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공연계가 얼어붙은 상태다. 영국의 경우 뉴욕 브로드웨와 함께 연극·뮤지컬의 양대 중심지인 런던 웨스트엔드는 물론이고 전국 공연장들이 문을 닫았다.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의 경우 올해 예정된 공연을 전부 취소했고, 로열발레단 등 전속단체의 단원들은 모두 휴직에 들어갔다. 문제는 공연장의 재개 시점을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미권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매킨토시와 마찬가지로 시즌이 시작하는 가을에도 공연을 재개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개 구미 공연계는 9월 중순 시즌이 시작해 이듬해 6월에 막을 내린 뒤 7~8월 오프시즌엔 공연예술축제가 열리는 구조다. 하지만 현재로선 9월에도 극장을 열기 어렵다.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어도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선 실내 공연에 따른 감염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 국립 오페라(ENO)는 최근 9월 중순 시즌을 시작하되 전용 공연장인 런던 콜리세움 대신 야외에서 드라이브인 오페라 3주간 시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킨토시 등이 구제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은 영국 정부의 모호한 지침 탓이다. 영국 정부는 공연장 출입 등 불필요한 사회 접촉을 최소화하라고 당부하면서도 정부 차원의 공연장 폐쇄 권고를 내리지 않았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공연 중단을 명령하면 재정적 손해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자발적 판단에 맡기는 상황에서 업계가 부담해야할 피해는 막대하다. 이 때문에 영국 국립 발레단(ENB) 예술감독 타마라 로호도 “정부는 공연계 지원책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분명한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극장이 문을 닫으면 구제를 요청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