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내부 보고서 “전세계 반중정서 최악… 미중 무력충돌 대비해야”

입력 2020-05-05 12:18 수정 2020-05-05 15:49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신화연합뉴스

중국 내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반중 정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중 무력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안전부는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이 작성한 반중 정서 관련 보고서를 지난달 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 지도부에 전달했다.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반중 정서가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우려했다.

중국 정부는 1989년 6월 4일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과 시민들을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유혈진압했다.

중국 정부는 당시 사망자가 총 241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최소 1000여명, 최대 4000명가량 숨졌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천안문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고,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대중국 제재에 나서면서 1990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3.9%로 추락하는 등 중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보고서는 “중국의 부상을 국가안보의 위협이자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신뢰를 떨어뜨리려고 애쓰고 있다”며 “중국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국 정서 확산을 경계해야 하며, 양국의 무력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호주에서 백인 여성이 아시아계 여성을 폭행하는 장면. 호주에서는 반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유튜브영상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인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재선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중국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중국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왔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중국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지난달 30일에도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 연구소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를 봤다”며 관세 보복 등을 거론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우한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피터 나바로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4일 중국이 코로나19와 관련해 거짓말을 했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무역 협상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고 비판하는 등 대중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로이터는 “해당 보고서 내용이 중국 지도자들의 입장을 얼마나 반영하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이 해외 투자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반중 정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코로나19로 촉발된 반중 정서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미국은 지역 동맹국에 대한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강화해 아시아의 안보 상황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 및 기술 전쟁에서부터 홍콩과 대만 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계속 갈등을 빚는 등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 광저우에서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아프리카인.유튜브영상캡처

또 중국 광저우에서는 코로나19 증상도 없는데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거나 호텔 예약을 거부당해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이 SNS에서 확산되는 등 ‘흑인 차별’ 논란으로 아프리카에서도 반중 정서가 확산됐다. 중국의 아프리카 지역 일대일로 프로젝트도 흑인 차별 논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전 세계를 도는 중국 최대의 수출 히트상품은 코로나다” “코로나가 조만간 당신의 정치적 멸망을 의미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등 유럽에서도 반중 정서가 심상치 않다.

중국 관영 매체는 코로나19의 ‘이탈리아 발원설’을 제기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는 등 주요 7개국(G7) 최초로 일대일로에 참여한 이탈리아까지 코로나19 후폭풍이 거세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