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애널 ‘매수 추천’ 우위 불구 수익은 뒤져
기업체 눈치보기 급급한 국내 증권사들 눈여겨 볼만
최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분당을)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 1~3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하락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권사들이 낸 기업분석보고서는 ‘매수 일색’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32곳 중 30곳은 보고서의 투자의견을 '매도'로 제시한 경우가 한건도 없었다. 흥국증권(61건), DS투자증권(28건), 리딩투자증권(10건), 유화증권(4건), 한양증권(2건) 등 5곳은 100% 매수 의견이었다. 국내 증권사 32곳이 발간한 전체 기업분석보고서의 투자의견 평균은 매수 89.4%, 중립 10.5%, 매도 0.1%다.
이처럼 주식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든 말든 증권사들이 ‘매수 일색’ 추천 관행을 좀처럼 고치지 않는 이면엔 분석대상 기업체가 기업공개(IPO), 투자은행(IB) 업무, 신용공여를 위한 고객으로 부정적인 내용을 보고서에 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다가 애널리스트들의 기업방문 행사시 문전박대를 당하는 등 왕따로 전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증권사 애널들의 이 같은 이해상충을 둘러싼 문제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도 비슷하게 겪는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은 최근 로봇과 사람 애널의 종목 추천 및 기업분석 성과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4일 소개했다. 이 보고서는 핀테크 또는 AI시대에 로봇 애널의 장점을 인간 애널과 하모니를 이뤄 개인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투자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주목적으로 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는 국내 증권사들도 눈여겨 볼 만한 내용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2003~2018년 7개 로봇 애널 회사들이 발표한 7만6000여개의 종목 리포트와 인간 애널이 행한 리포트 성과를 비교했는데, 로봇 애널이 인간 애널에 비해 투자자들에게 훨씬 좋은 실적을 안겨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 애널의 매수 추천이 47%로 로봇의 매수 추천 비율 32%를 압도한다. 반대로 매도 추천은 로봇이 24%로 인간 애널(6%)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로봇의 ‘매수 추천' 포트폴리오가 연간 6.4~6.9% 정도의 수익률이 예상된 데 비해 인간 애널의 예상성과는 1.2~1.7%에 그쳤다.
연구팀은 그 이유로 인간 애널들은 자신들의 기존 매수 추천을 수정하는 데 뭉기적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간 애널들 입장에서 보유(hold) 또는 매도 추천은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아무래도 추천하는 회사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해상충 문제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적인 인센티브 측면 외에도 인간 자체가 가진 행동편향 또는 낙관편향 성향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주관에 휘둘리지 않는 로봇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이를 수시로 수정 분석보고서에 반영하는데 그 비율이 인간 애널보다 18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봇은 인간에 비해 해당 종목에 대해 덜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매수 추천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지만 균형된 매수-매도-보유 비율로 개인투자자들에게 더 좋은 투자성과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인간 애널은 기업들의 실적 시즌 위주로 추천 보고서를 작성하는 반면에 로봇은 증권거래소 등 금융당국 제출 보고서 등 더 다양한 서류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다만 종목 추천 능력 면에서 로봇이 인간보다 낫기는 하지만 인간 애널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콘퍼런스 콜이나 경영진과의 토론 등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나 개인정보 등 이른바 소프트 인포메이션은 로봇이 아닌 인간 패널이 분석해낼 수 있는 분야다. 또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를 분석하는데 사람이 투입되는 것보다 로봇이 나은 반면 한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통찰력에서도 사람이 로봇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