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저유가 영향 계속 우려도
농축수산물 물가는 ↑
공업제품, 여행 관련 서비스 등 줄줄이 ↓
고교 무상교육 등 공공서비스도 물가 ↓ 견인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넉 달 만에 다시 0%대 상승률로 회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외식·여행 서비스 수요가 감소한 데다 기록적인 저유가가 겹치면서 석유류 가격이 대폭 하락한 영향이 컸다.
소비자로서는 물가 상승폭 둔화가 반가운 소식이지만, 저물가는 거시적으로 볼 때 수요가 위축돼 있다는 ‘위험신호’이기도 하다. 저물가가 계속되면 생산 등 경제활동 전반이 위축돼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5월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각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 소비가 늘면서 1%대 물가 상승률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곤두박질친 국제유가의 영향이 계속되면서 5월 물가도 불투명하다는 우려도 있다.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104.95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0.1% 상승했다고 4일 밝혔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9월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점차 증가 폭을 넓혔다. 올해 들어서는 2~3월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산세에도 1%대 상승률을 유지했지만, 지난달 다시 0%대로 내려앉았다. 지난 10월 보합세(0.0%)를 보였던 이후 6개월 만의 최저 상승률이다.
상품과 서비스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다. 코로나19로 가정 내 식재료 수요가 늘면서 수산물은 8.1%, 축산물은 3.5% 오르는 등 농·축·수산물 가격은 뛰었다. 하지만 공업제품은 0.7% 하락했다. 소비 급감을 타개하기 위해 백화점 등에서 세일 행사를 한 것도 물가에 영향을 줬다. 구두 가격은 1년 전보다 10.2%, TV 가격은 10.4%, 믹서 가격은 30.6% 각각 떨어졌다.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승용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하면서 승용차 물가도 2.2% 내려갔다. 석유류 가격은 국제 유가 하락 영향으로 6.7% 떨어졌다.
유가 등 대외 충격 요인을 제외한 근원물가 역시 외환위기 이후 20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는 0.1%로 1999년 12월(0.1%) 이후 20년 4개월 만에 최저였다. 과거 정부에서 근원물가로 사용해온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도 0.3%로 1999년 9월(0.3%)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저유가 상황에서 유가 요인을 제외한 근원물가마저 바닥을 치는 것은 그만큼 수요 부진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디플레이션(수요 부진으로 물가가 계속 하락하는 현상) 여부를 예측할 단계는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위축에 정책적 요인이 겹쳐 물가 상승이 억제됐다고 본다. 지난달 공공서비스 물가는 고교 무상교육 등에 힘입어 1.6% 하락했다. 지난해 고교 3학년에게만 적용되던 무상교육이 올해 4월부터 고2까지 확대되면서 고교 납입금이 64.0%나 줄었다. 학교 급식비도 35.8% 감소했다.
전체 서비스 물가는 0.2% 상승했다. 개인 서비스 물가는 외식과 외식 외 서비스로 나뉘는데, 통상 연초에 많이 오르는 외식 물가가 올해는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로 0.8% 상승에 그쳤다. 승용차 임차료(렌터카·-16.0%), 호텔 숙박비(-6.8%), 해외단체여행비(-10.1%) 등 여행 관련 서비스 물가도 줄줄이 떨어졌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