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의 ‘n번방 추적기’ 시리즈 보도(3월 9일) 이후 조주빈을 포함해 십여명의 ‘박사방’ 범죄자와 ‘갓갓’을 제외한 ‘n번방’ 운영진 상당수가 검거돼 이미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들이 제작한 성착취물은 여전히 다크웹 등 ‘어둠의 SNS’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경찰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수사에 본격 나서면서 유통방식은 전보다 더 은밀해졌다.
특정 웹브라우저로만 접속이 가능한 다크웹 내 한국인 커뮤니티 ‘코챈’에는 4일 오후까지도 박사방과 n번방에서 만들어진 성착취물이 ‘자료’라는 이름으로 거래됐다. 코챈 게시판에는 ‘자료’를 구한다는 구매자들의 요청글과 자신이 보유한 자료가 ‘정품’이라는 판매자들의 홍보글로 가득했다. 다크웹은 접속자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어 여전히 성착취물 유통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국민일보가 지난달부터 한 달간 코챈을 모니터링한 결과, 성착취물의 유통은 끊임없이 이뤄졌다. 지난 3월 조주빈 검거로 사회가 떠들썩할 때에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달 15일쯤 코챈에서 성착취물을 대량으로 유통했던 사회복무요원 최모(23)씨가 검거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잠시 위축됐을 뿐이다. 당시 ‘경찰이 코챈을 지켜보고 있으니 당분간 조심하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성착취물 거래가 재개됐다.
지금도 코챈과 텀벡스 등 해외에 서버를 둔 SNS에서는 하루에 4~5건씩 꾸준히 “박사방·n번방 자료 풀팩 판매한다”는 글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한 이용자는 “레알 신기하네, 어그로(관심) 덜 끌릴 때 되니까 또 야동 XX 올라오네 ㅋㅋ”라며 당국의 단속을 비웃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금전이 아닌 자신의 ‘어그러진 평판’을 위해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인물의 모습도 포착됐다. 한 성착취물 유포자는 ‘코챈 되살리기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난 OOO 뿌리면서 박사방 자료 팔던 XX인데 이제 재미도, 흥미도 없어졌다”며 “좋은 정보는 공유하며 놀자.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다”라며 성착취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다크웹 링크를 올렸다. 이어 “알아서 VPN(가상사설망) 켜고 받으라”며 주의를 주기도 했다.
다른 이용자는 “박사 XX는 잡히기 전에 자료 전부 올려두고 잡혀 갔으면 코챈에서 20년 동안 열사로 빨렸을 듯 ㅋㅋ”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피해자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들의 모습에서 여전히 성착취물의 제작과 유통을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는 행태가 드러났다.
성착취물이 공유되는 플랫폼은 다크웹뿐만이 아니다. 텀벡스 등 해외에 서버를 둔 SNS에선 현재도 성착취물이 게시되고 있다. 한 텀벡스 이용자는 교복을 입은 학생을 촬영한 영상을 올리면서 “3일간 괜찮은 영상 400개, 2만원에 모십니다. 채팅주세요”라며 대놓고 홍보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성착취물을 모니터링해왔던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이 유포됐던 방들은 대부분 사라졌다”면서도 “하지만 n번방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수사망을 최대한 피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피해자의 신상정보와 함께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성착취물 유통망이 더 은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다크웹에서는 판매자가 자신의 텔레그램 메신저 아이디를 공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텔레그램보다 추적이 더 어려운 다크웹 전용 메신저인 ‘리코챗’을 주로 활용한다. 판매자가 성착취물을 암호화해 업로드한 다크웹 내 주소의 링크를 올리고, 구매자에게는 리코챗을 통해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암호를 건네주는 식이다.
이용자들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정보를 공유하는 치밀함도 보이고 있다. 한 이용자는 “(수사에 협조한) 디스코드 같은 앱은 접고 텔레그램·와이어·위커만 쓰라”며 “텔레그램은 유저간 소통은 피하고 순수하게 자료 공유와 다운로드 위주로 활용하고, 대화는 무조건 와이어와 위커로 가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와이어와 위커는 가입 시 전화번호를 요구하지 않아 익명성과 보안성에 있어 텔레그램보다 한 단계 위로 평가 받는 메신저들이다.
또 한때는 문화상품권 등이 거래에 주로 활용됐지만, 현재는 가장 추적이 어렵다는 가상화폐 모네로로만 거래하고 있다. 모네로는 익명성에 초점을 둔 대표적인 ‘다크코인’이다. 특히 한 판매자는 “리스크 0%”라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상화폐 거래소나 구매대행업체를 이용하지 말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거래소를 중계하지 않고 모네로 개인지갑으로만 거래한다면 사실상 추적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복수의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은 “거래소에 등록한다면 기록이 남기 때문에 신원을 어렵지 않게 특정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거래소에 등록된 계좌가 아니라 거래소와 분리된 개인지갑이라면, 심지어 차명으로 등록한 지갑으로 거래했다면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끝까지 추적해 디지털 성범죄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법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범죄자들의 논리일 뿐”이라며 “반드시 찾아내고 검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