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하려 혀 깨물었다 옥살이…56년만 재심 청구

입력 2020-05-04 15:36 수정 2020-05-04 16:00
국민일보DB

성폭행에 저항하다가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여성이 56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는 재심을 청구한다.

부산여성의전화는 최말자씨(74·여)가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1964년 5월 최씨(당시 18세)는 자신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던 노모씨(당시 21세)의 혀를 깨물어 1.5㎝가량을 잘리게 한 혐의(중상해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6개월 동안 옥살이도 했다.

당시 중상해 혐의로 붙잡힌 최씨는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를 견디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묵살당했다. 검찰은 노씨에게는 강간미수 혐의조차 적용하지 않고 특수주거침입 등의 혐의로만 기소했다.

법원에서도 2차 피해가 이어졌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오히려 피해자인 최씨에게 “처음부터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되묻는 등 심각한 2차 가해를 했다.

결국 부산지방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최씨는 가족의 냉대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아왔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도 소개됐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 장소와 집이 불과 100m 거리다. 범행 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주변 집에 들를 수 있었다”며 “혀를 깨문 최씨의 행위는 방위의 정도를 지나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학계에서도 이 같은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씨는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용기를 내 부산여성의전화와 상담했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올해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최씨와 변호인단, 부산여성의전화는 재심 청구에 앞서 6일 오후 1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를 촉구할 계획이다.

고순생 부산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당시에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최 씨처럼 한을 품고 살아온 여성이 많을 것”이라며 “이런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당당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최씨가 56년 만에 재심 청구를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랑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