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코로나발 실업자들 모여라…英 농촌의 봄농사 풍경

입력 2020-05-04 13:45
최근 영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봄철 수확기를 맞아 일손이 부족한 농촌으로 향하고 있다. 영국 BBC 캡처

최근 영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이 봄철 과일과 채소 수확기를 맞아 일손이 부족한 농촌으로 몰려들고 있다. 영국 정부도 도농간 일자리 미스매치에 대한 해법으로 농촌 취업을 들고 나온 상황이다.

영국 BBC방송은 3일(현지시각) 농촌에 재취업한 실업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BBC는 영국 남동부 켄트 지역의 거대한 상추농장을 방문했다. 100년 전통의 이곳 농장 관리자 오트웰은 “2주 안에 상추를 모두 수확해야 한다”면서 “시간은 부족한데, 일꾼은 45명이나 부족하다”고 지난달 24일 털어놓았다.

영국 BBC 캡처

이 농장은 아무런 구인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최근 50여 건의 일자리 문의가 쇄도했다. 오트웰은 “8명을 우선 선발했고, 사회적 거리두기 하면서 일하도록 훈련했다”고 BBC에 말했다.

상추밭에는 티셔츠와 자켓 등 농사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한 여성 6명이 새벽 수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땅바닥의 상추를 썰고 포장하고 있었다.

영국 BBC 캡처

45세의 여성 샐리 펜폴드는 “돈도 벌지 못하고 집안에만 있는 게 지겹고, 그저 밖에 나가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말 정부의 폐쇄조치로 일하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으면서 서빙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우연히 지역 라디오에서 농장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몇 주 동안 집에서만 지내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농촌 일에 지원했다고 펜폴드는 밝혔다.

맞은편 부엌에선 32세의 남성 다니엘 마틴이 노트북으로 문서작업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 건설업계에서 잘 나가는 토목기사였던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탓에 일자리를 잃었다. 마틴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건설현장이 폐쇄되면서 많은 고객들이 공사를 중단하는 바람에 돈줄이 끊겼다”고 전했다.

영국 BBC 캡처

마틴은 “난 활동적인 사람인데 제발 집에서 나와서 무슨 일이든 하게 해 달라”고 덧붙였다.

실직한 요리사인 32살의 남성 토마스 탠스웰도 BBC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던 그는 “레몬즙을 짜서 레모네이드를 만들든 뭐든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외 일을 좋아하고 일손 놓는 상황이 두려워서 농장일을 하게 됐다는 탠스웰은 “일이 장갑처럼 손에 딱 맞는다”며 “오랫동안 흥미롭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영국 BBC 캡처

지원자에게 농가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영국 윤리적일자리제공연맹은 지금까지 약 5만5000명이 농업 관련 일자리에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조지 유스티스 영국 농림부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에는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3분의 1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수백만 명의 (실직한) 직장인들이 6월 수확기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8만명을 넘어서는 등 크게 확산해 봄철 수확기에 건너오던 동유럽 이주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겼다. 반면 도시에서는 대량 실업자가 발생했고 영국 정부는 이러한 도농간의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근 주민들을 농장으로 연결하고 있다.

영국 BBC 캡처

하지만 모든 실업자들이 농촌 일에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농장감독인 오트웰은 “신입들이 일이 힘들고 지루해서 견디지 못하거나, 예전 직장으로 돌아간다고 일을 그만둘까봐 걱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수확기 도중에 일꾼들이 농장을 버리는 상황은 재앙에 가깝다고 BBC는 전했다.

농장 일은 계절적인 작업일 뿐 불안정성이 커서 영국인들이 꺼린다고 오트웰은 덧붙였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