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논란을 빚었던 일본의 ‘골판지 사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계속되고 있다. 칸막이 등 골판지를 활용한 방역 물품들이 적극 판매되는 모습이다.
4일 마이니치 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돗토리현 현청에서는 모든 직원의 책상에 골판지 칸막이가 설치돼 있다. 큰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코로나19 감염 위험도 낮추겠다는 취지다.
직원끼리 대면해야 할 일이 있다면 책상과 책상 사이에 골판지 칸막이를 끼운 뒤 구멍을 낸다. 그리고 비닐로 된 랩을 씌워 얼굴을 보이게 한다. 자리 간 간격을 벌리고 앉은 방향을 바꾸는 방법도 동원됐다.
이날 기준 돗토리현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단 3명이다. 일부 현지 언론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이곳의 지역감염이 이른바 ‘골판지 대응’의 효과라고 분석했다. 그러자 전국 골판지 제조 업체들은 사무실 전용 칸막이를 만들어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업체는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했고 이미 행정 기관 및 의료 기관 등에서 도입되고 있다”며 “일반 가정에서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골판지를 향한 일본의 사랑은 앞서 여러 차례 논란을 낳았었다. 그중 하나가 지난해 9월 첫 공개된 도쿄올림픽 선수 숙소의 ‘골판지 침대’다. 올해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놓일 침대로 도쿄올림픽 공식파트너사인 ‘에어위브’(Airweave)가 제작한 제품이다.
상세 이미지를 보면 작은 상자를 여러개 엮어 큰 상자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자 두개를 또다시 붙여 하나의 침대로 만든 식이다. 큰 뼈대뿐만 아니라 연결부위도 모두 골판지로 만들어졌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조립 과정을 시현하며 “종이로 만들어 가볍지만 지탱할 수 있는 무게는 무려 200㎏이나 된다” “환경친화적이라는 강점이 있고 편안함이 보장된다” 등 자화자찬을 쏟아냈다. 그러나 선수들을 배려하지 않은 침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각국 언론을 비롯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골판지가 문제로 떠오른 사례는 지난달에도 있었다. 일본 수도권 관문인 나리타 공항이 로비에 설치한 ‘골판지 대기소’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해외입국자들을 임시 격리하는 과정에서 공항 로비 한가운데 골판지로 만든 간이침대를 놓고 머물게 한 것이다. 공항은 대상자들의 유전자 증폭(PCR)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틀 동안 공항 골판지 침대에 머물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장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확산됐다. 그러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골판지의 방역 효과에 의구심을 갖는 시선이 생겨났다. 이에 “선진국의 대응이 아니다” “오히려 감염을 부추기는 꼴이다” “숙박 시설 확보가 왜 안 되느냐”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이같은 논란들에 기름을 부은 건 아베 신조 총리의 유착 의혹이다. 아베 총리의 친형인 아베 히로노부가 2012년부터 포장 자재·골판지 제품 거래를 주로 하는 미쓰비시 상사 패키징 주식회사 사장이라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 숙소 침대와 나리타공항의 골판지 대피소 모두 아베 형제의 손이 닿았을 것이라는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국제 행사나 국가 재난 대응 과정에서 골판지 제품이 대규모로 사용된 이유에 아베 총리가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같은 주장에 대응한 적은 없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