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보수 진영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표조작 음모론을 향해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제시해 보라”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개표조작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제시해 보라. 얼마나 개연적인지 구경 좀 하자”며 “문재인 정권이 선거에 패배할 것 같아서 부정선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 그래서 어떻게 했다는 얘기냐”며 운을 뗐다. 진 전 교수가 거론한 ‘개표조작 음모론’은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제기하고 있는 ‘사전투표 조작설’인 것으로 보인다.
진 전 교수는 부정선거가 가능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그는 “일단 바꿔치기할 투표용지를 인쇄할 인쇄소를 비밀리에 섭외해야 할 것이다. 인쇄소 사장은 물론 직원들 입단속도 해놔야 한다. 그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을 알바생들도 고용해야 한다”며 “사전조사를 통해 비밀을 지켜줄 사람들을 미리 물색해놔야 한다. 몰래 도장 찍을 작업장소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이어 “아울러 각 지역 투표율을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바꿔치기한 투표용지의 수가 실제 투표자 수와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들통난다”라며 “그다음엔 전국 253개의 지역구에서 투표함을 바꿔치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모든 지역의 선관위 직원을 매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 한 명이라도 매수에 실패하면 안 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바꿔치기한 진짜 투표함과 투표지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253개 투표함을 소각 처리할 장소와 인원이 필요할 것이다”라며 가상 시나리오를 끝맺었다.
진 전 교수는 자신이 쓴 가상 시나리오에 대해 “이게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냥 미친 거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그러니 그런 분은 저보다는 의사 선생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생산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또 “음모론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종의 ‘귀류법’을 사용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는 “음모론의 주장을 참이라고 가정할 경우 그 대가로 얼마나 부조리한 전제들을 새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보여주면 된다. 그 안에 들어가 그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일일이 반박할 필요 없다. 또 다른 논리를 만들어내서 덤빌 테니까”라며 “그건 일종의 편집증이라,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된다. 논리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라며 글을 맺었다.
진 전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개표조작 음모론의 악순환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유튜버는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허구를 만들어 제공하고, 대중은 하루 종일 그런 콘텐츠만 듣다가 결국 그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게 되고, 그 허구가 현실 혹은 사실과 충돌하면 그 인지 부조화 상태를 해결해 줄 또 다른 허구에 대한 니즈를 갖게 된다”며 “그 니즈는 보수 유튜버들에게 좋은 돈벌이 기회가 된다. 수요가 있는 곳엔 당연히 공급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결과 집단 전체가 현실에서 유리되어 자기 세계 안에 갇혀 버린다”고 진단했다.
진 전 교수는 “민중은 창작을 한다”는 하이데거의 명언을 인용하며 “유튜버들이 만드는 컨텐츠는 일종의 집단청작, 즉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민중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알약 하나 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허구는 남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만든 것이라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민 의원을 포함한 일부 보수층들은 개표조작 음모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민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 “Don’t allow RIGGED ELECTIONS!(부정선거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를 공유하며 “왜 갑자기 이런 트윗을 남겼을까”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민 의원은 또 “사전선거가 무효라면 이번 선거는 모두 무효”라고도 했다.
박준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