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지역 경제 부흥, ‘관성’ 탈피하고 ‘혁신’해야

입력 2020-05-03 18:42
[코로나19 이후 한국경제, 틀을 바꿔라] ④위기의 지역 경제, 혁신 보여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통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 공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관광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부터 파열음이 시작됐다. 불가피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관광 산업을 위축시켰고 지역 소비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의 대형 소매점 판매액은 전년 동월보다 21.5% 줄었다.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컸던 대구시가 두드러진다. 대구시의 대형 소매점 판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39.2%나 급감했다. 외부 손님이 뚝 끊기고 지역 내 소비마저 줄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단기적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향후 ‘제2의 코로나19’가 올 수도 있다는, 즉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역 경제를 견인해 온 ‘제조업 신화’는 더 위태롭다. 수출 경기에 민감한 업종일수록 풍전등화 신세다. 지난달 수출액이 전년 동월보다 24.3%나 폭락하면서 위기감은 더해지고 있다.

이는 해당 사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소비 위축을 부르는 요인이다. 동시에 지역 내 소비 급감으로 이어진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업 호황을 구가했던 울산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3월 기준 울산시의 백화점 판매액은 전년 동월보다 44.7% 줄었다. 대구시 백화점 판매액(-58.0%)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낙폭이 가장 크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밀어 붙이기도 힘들다. 코로나19를 넘어 설 정도의 기폭제가 될 거라는 확증이 없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당장 눈에 띄는 산업 육성에 천착하기 보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린다. 아울러 신산업이 필요로 하는 지역 인재를 향후 어떻게 육성할지 심도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따라붙는다.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 무엇이 필요한가

지역 경제의 위기는 인구 감소부터 시작된다.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청년층이 타지로 떠나고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인구 이동으로 지역별 빈익빈 부익부는 가속화한다. 일례로 올 들어 인구가 늘어난 지역은 세종시와 경기도 두 곳뿐이다. 두 지역의 재정 자립도는 지난해 기준 각각 62.1%, 60.2%로 서울(76.5%)에 이어 2, 3위를 차지했다. 인구가 곧 지방 경제의 척도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인구 감소를 막겠다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해봤자 그 때뿐이다. 일시적 경기 부양 효과는 있다. 하지만 정부 돈을 들여 지은 시설은 과도한 유지비 때문에 골칫덩이가 되기 일쑤다. 최근 사례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이 꼽힌다. 당시 건립했던 스피드 스케이팅장, 하키 센터, 슬라이딩 센터 등은 지난해 기준 35억5000만원이라는 적자를 냈다. 적자는 지자체의 재정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지속가능하다고 보기 힘들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출발점은 결국 ‘지속가능한 일자리’다. 앞서 일자리 감소로 지방 소멸 위기를 체감한 일본의 사례에서 단초를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은 ‘지방창생정책’을 통해 크게 4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기관 지방 이전’ ‘기업-지역 연계 강화’ ‘일자리 확대를 통한 지방 이주 유인책 마련’ ‘지방대학 활성화’가 꼽힌다.


정부기관 지방 이전은 이미 한국에서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고 재정 자립도도 견실한 세종시 사례가 꼽힌다. ‘광주형 일자리’ 등 기업-지역 연계 역시 한국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정책이다.

다만 지방 이주를 유도하는 일자리 확대 측면은 아직 한국이 약한 부분이다. 코로나19 이후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수립할 때 주안을 둬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시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로 주목을 받은 ‘비대면’이나 ‘바이오’와 같은 특정 산업 분야를 새롭게 키우는 데 천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사실 이번 지역 경제 위기는 코로나19 전에도 미진했던 4차 산업혁명의 부실한 대응이 불러 온 것”이라며 “새로운 산업을 키우기보다는 관광·제조업 등 기존 지역 산업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역 인재 육성, 틀을 바꿔야

지방대학 활성화 역시 한국의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위한 숙제다. 지역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하는 점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해외에서는 지역 대학에서 창업하거나 (인력이) 유입되는 사례가 많은데, 한국의 지역 대학은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설령 인재가 있어도 일자리를 찾는데 유리한 수도권으로 인재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방대학 자체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인재 육성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대학을 구조조정하고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지역 인재 육성이 가능한 ‘직업학교’ 형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학 졸업자의 3분의 1 이상이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임금이 낮은 게 현실”이라며 “기업들이 원하는 직업능력을 공급할 수 있는 한국폴리텍대학과 같은 일종의 직업학교가 절실하다. 대학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