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CEO “테슬라 주가 너무 비싸, 집팔겠다” 발언 파장
코로나19 팬데믹이 연출한 비정상적인 상황인 걸까. 아니면 주식은 원래 잔인한 투자 자산인 때문일까.
요즘 증시를 보면 다른 종목의 불행이 나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사람 목숨을 둘러싼 관심이 국내외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고 투자자들은 그런 분위기에까지 여과없이 편승할 정도로 수익 우선주의로 치닫고 있다.
지난 3월 23일 코로나19 팬데믹 폭락 이후 증시가 반등했으나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가 겹친 상황에서 전세계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뭐 하나’만 터지면 추세가 반전될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에 김정은의 건강 스캔들과 코로나19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치료제로 존재감이 커진 렘데시비르의 효능을 둘러싼 논란이 국내외 증시에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김정은 목숨에 투기하는 주식시장
국내 시장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3월 23일 대폭락장 연출이후 전개된 주식시장의 반등세에 제동을 걸었다. 물론 북한 최고통수권자의 신변 이상이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지대하기에 주식시장도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일부 테마주를 중심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생사여부를 투기대상으로 삼는 양상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동해 북부선(강릉∼고성 제진) 추진 기념식'을 앞두고 남북간 철도 사업 본격 시동에 대한 기대감으로 철도 테마주들의 주식은 단기간 급등세를 이어왔으나 갑자기 김정은 중태설이 불거지자 투자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에코마이스터 등 철도 관련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내 평생 김정은 살아 있기만을 고대해 보기는 처음”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반대로 빅텍 등 방산 관련주 투자자들은 한국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신변이 심상치 않다는 추측성 뉴스 속보들에 더 기대를 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황금 연휴로 지난 30일부터 3일까지 주식 시장이 휴장한 기간에도 증권 사이트에는 관련주 투자자들이 사태추이를 분석하느라 댓글 경쟁이 치열했다. 지난 2일 김정은이 20일 만에 등장했다는 소식으로 경협주 투자자들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인 반면 방산주 투자자들은 당장 증시가 다시 열리는 월요일(4일)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지는 듯 했다. 심지어 김정은이 등장한 사진과 동영상의 조작설 주장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러나 3일 아침 중부 전선 감시초소(GP)에 북측에서 발사된 총탄 수발이 피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자 투자자들의 분위기는 다시 역전됐다. 일부 방산주 투자자들은 이 총탄 사건을 김정은 신변 이상 사건 때문에 벌어진 거 아니냐며 확대해석하기도 했다.
사람 목숨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는 ‘주식투자의 잔인성’이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진:연합뉴스>
◇생사여탈권을 쥔 ‘주세주(救世株)’ 렘데시비르?
미국 길리어드사가 개발한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를 둘러싼 ‘열광’은 코로나19로 생사기로에 놓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 중태설’ 보다는 그나마 덜 비인간적이다.
그러나 아직 효과가 확실히 입증도 안된 약품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불어넣고 있어 그 이면에 투기와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에서 진행된 임상 실험 중간 과정이 일부 언론에 엇갈린 상황이 보도되면서 전세계 주식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는 것은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WHO)가 홈페이지에 동료 평가(peer review·구성원간 서로 하는 평가) 없이 중국 임상 실험이 치료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실었다는 점은 우연한 실수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배경을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하다.
지난 1일에는 백악관 코로나대응 TF 멤버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비상 사용 허가를 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데 이어 미 식품의약국(FDA)이 중증환자에 긴급사용 승인하겠다고 발표하자 뉴욕증시가 다시 급등했다. S&P 500 지수는 2.7%나 오르고 길리어드 주가는 6%가량 반등했다.
하지만 FDA의 긴급사용 승인은 연구가 진행 중인 상황에 취할 수 있는 조처로, 정식 사용허가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아직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의약품 하나가 증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파우치 박사 조차도 환자 생존율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럼에도 주식 투자자들이 렘데시비르에 열광하는 것은 최근 주가 반등이후 이렇다할 추세 반등 재료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렘디시비르를 촉매제로 삼으려는 주식 투자 세력들의 의도도 한몫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경험많은 바이오 담당 펀드매지저들 조차 복잡한 임상시험 결과를 읽어내기 힘겨워하는 상황이라면서 일반 투자자들은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의약 정보를 과신할 경우 거품이 한꺼번에 꺼져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머스크, “사람보다 경제가 먼저다”?
CNBC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일 트위터에 “내 의견으로는 테슬라의 주가가 너무 높다(Tesla stock price is too high imo.)”는 글을 올렸다. 이 발언에 테슬라 주가는 전날 종가보다 80.56달러, 10.30%나 내린 701.32에 마감했다. 시가 총액이 140억 달러 날아간 셈이다.
워낙 미국 실리콘 밸리의 이단아로 통하는 머스크의 화두성 발언인지라 해석도 분분하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그의 발언이 내부자 거래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주식을 이미 매각하고 떨어지면 다시 주워담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머스크가 다음주 스톡옵션 행사를 앞두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추측도 있다. 현금 흐름이 악화된 테슬라가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커버넌트(채권자 보호를 위해 준수하기로 하는 조건으로 이에 반할 경우 조기상환이 불가피함)에 포함될 조건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하지만 그 이전에 머스크가 코로나로 인한 경제 봉쇄에 반발하는 발언을 했음을 감안한다면 그 연장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즉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코로나 경제봉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상황에서 ‘경제가 먼저냐, 사람 목숨이 먼저냐’는 논란에 불을 지피려는 행동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지난달 29일 테슬라의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집에 가두고 있다. 이는 파시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일갈한 바 있는데 이틀 뒤 ‘테슬라 주가 고평가’ 트윗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소유물을 팔고 있다. 집도 소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트윗에 밝힌 것은 “강제적으로 집에 가두고 있다”고 반발한 기자회견 발언의 연장선으로, 경제봉쇄에 대한 반발을 자택 처분에 빗대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테슬라 고평가 발언은 상식적으로 회사 운영에 책임을 진 CEO가 내뱉을 말은 아니다. 경제 봉쇄로 테슬라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데 현재의 주가가 말이 되느냐는 화두를 던진 것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이다. 테슬라 주가는 3월 60% 폭락이후 무려 120%나 반등했는데 경제봉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냐는 반어법인 셈이다.
머스크 CEO는 몇 년전에도 트윗논란을 일으켜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한 상황이어서 굳이 그가 의도적으로 또 내부자 거래 의혹을 받을 만한 발언을 했겠느냐는 지적이다. 그는 2018년 8월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에 비상장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썼고 주가는 폭등했다. 이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그에게 2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테슬라 이사회 의장직 포기를 조건으로 합의하기도 했다. 테슬라 주가에 영향을 미칠 내부자 발언도 금지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