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의 주역인 명실공히 대한민국 톱클래스 김은숙 작가가 2년 만에 내놓은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가 연일 하락세다. 지금까지의 ‘김은숙표 신데렐라 문법’을 답습했다는 이유로 평행세계라는 특수 소재에도 시청률과 화제성은 답보 상태다. 2회에서 11.6%까지 올랐던 시청률은 6회에서 8.5%까지 추락했다. 전작 tvN ‘미스터 션샤인’과는 정반대다. 당시 1회에서 8.9%였던 시청률은 6회 들어 11.6%로 껑충 올랐다. 마지막 회에는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했다. 지상파와 케이블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도 그렇다.
‘더 킹’은 ‘시크릿 가든’과 ‘도깨비’에 이은 김 작가의 세 번째 판타지 로맨틱 드라마이고, 그의 주특기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 반응은 사뭇 다르다. 김 작가는 2020년의 시청자가 드라마를 선택하는 기준과 눈높이를 전혀 모르는 듯 보인다. 여성을 철저한 ‘을’로 그리는 그의 문법은 구태의연함을 넘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시청자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문제는 여성혐오다. 곤은 모든 것을 갖춘 제국의 황제이고, 태을은 평범하지만 남자 주인공을 단숨에 사로잡아 2회 만에 청혼을 받는 인물이다. 태을은 신분과 이름을 안 지 채 몇 시간 되지 않은, 사실상 모르는 남자 곤의 일방적인 키스를 받고도 눈을 지그시 감을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구서령(정은채) 캐릭터다. 시대를 관통하는 정책으로 지지를 얻어 최초이자 최연소 여성 총리가 된 서령 캐릭터를 만들어놓고도 굳이 황제와의 스캔들로 지지율을 높이려는 얄팍한 설정을 추가했다. 서령은 곤에게 연인이 생긴 것 아닌지 의심하는 비서에게 “어려? 예뻐?”라며“(나는) 왼쪽이 더 예쁘네”라고 말했다. ‘어리고 예쁜’ 여성을 돋보이게 하고 이를 샘내는 설정은 김 작가 특유의 구시대적 여성혐오다. 전작인 ‘하이에나’가 기존 여성 캐릭터의 관습적인 나약함을 부수어 놨는데, 그 자리에 ‘더 킹’이 자리했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김 작가의 드라마는 신분상승 스토리가 기본이었지만 그 문법이 통하지 않기 시작한 계기는 2013년 ‘상속자들’부터다. 그때부터 이미 여성들은 더 이상 신데렐라식 전복을 원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2016년 ‘태양의 후예’에 여자 주인공은 전문직으로 그리면서 반전을 도모했지만 적극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이라는 기본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작가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강점인 주인공 간 밀고 당기는 쫄깃한 애정심리전을 큰 궤로 두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섬세했어야 한다. 남자 주인공은 언제나 능동적이고 저돌적인데, 여자 주인공은 한결같이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동어 반복을 2020년에 적용했으면 안 됐다. 로맨스도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얽혔다. 유독 남자 주인공에게만 무례하고도 곧 그의 애정공세를 받아들이는 태을이 그렇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앞뒤 좌우 가리지 않는데 심지어 돈과 명예 모든 것 갖춘 남자 곤이 그렇다.
이 평론가는 “진취적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1900년대부터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며 지금의 변화를 만들어냈다”며 “지금의 여성 시청자는 다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여성이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부한데 개연성은 터무니없다. 자기세계에서 능동적이었던 태을을 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 캐릭터로 퇴행하도록 만드는 극단적 설정이 평행세계다. 이마저도 설명이 불친절하다. 드라마는 1994년과 2019년의 대한제국·대한민국이 번갈아 보여주지만 편집점을 구분하는 연결고리가 미약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런 판타지적 소재는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몰입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