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VIEW] 트럼프, 분노와 헛발질…백악관에선 무슨 일이

입력 2020-05-02 08:13 수정 2020-05-02 13:14
트럼프, “지고 있다”는 ‘비공개’ 여론조사에 격분
조급함에 ‘살균제 인체 주입’ 발언 ‘대형 사고’
트럼프, 자신의 대선 캠프 본부장에 ‘분노’ 전화
코로나 비판 여론, ‘중국 때리기’로 국면 전환 시도
트럼프, 외부 활동 재개…역풍 맞을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올해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이다.

그런 그를 괴롭히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백악관 안에서 불안과 초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주사로 살균제를 (몸 안에) 주입하는 방법은 없나”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한 것도 코로나19 사태를 빨리 끝내고 싶은 조급함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면서 중국이 자신의 재선을 막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정치 쟁점을 ‘중국 때리기’로 전환시켜 코로나19 대응 실패라는 미국 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다.

4월 22일부터 5월 1일까지 백악관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강박증’을 보여주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를 중심으로 이를 재구성했다.

브래드 파스케일 트럼프 대선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 2019년 10월 15일 텍사스주 샌안토니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4월 22일- 두 개의 여론조사

백악관에서 대선 관련 회의가 열렸다. 핵심 인사는 브래드 파스케일 트럼프 대선 캠프 선거대책본부장과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 대선 캠프와 공화당이라는 양대 축의 선거 책임자가 모두 참석한 것이었다. 이들 외에 다른 참모들도 배석했다.

두 개의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가 각각 회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하나는 트럼프 대선 캠프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였다. 다른 하나는 공화당이 대외비로 진행한 여론조사였다.

그러나 결과는 동일했다. 트럼프가 접전지역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사실상 굳힌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파스케일과 맥대니얼은 똑같은 요구사항을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매일 실시하는 코로나19 언론 브리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미국 국민들은 내 브리핑을 사랑하며 내가 그들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브리핑 때문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시행 중인 강력한 영업 금지·외출 금지 조치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영업·외출 금지로 미국 경제가 마비됐기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논리였다. 트럼프가 성급하게 경제 정상화를 외치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3일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살균제 인체 주입’ 발언을 던져 거대한 비판을 자초했다. AP뉴시스

4월 23일- 헛발질

트럼프는 미국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됐던 지난 3월 16일 이후 거의 매일 언론 브리핑을 가졌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말실수에 시달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부작용 가능성을 경고한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언론 브리핑에서 펼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날엔 초대형 폭탄이 터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의 ‘살균제 인체 주입’ 발언을 한 것이다.

전날 있었던 백악관 대선 회의가 알려지면서 트럼프가 헛발질했던 이유에 대해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뒤지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에 조바심을 느낀 트럼프가 급한 마음에 살균제까지 입에 올렸다는 것이다.

백악관이 내놓은 해명도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문제 발언이 나오기 직전, 윌리엄 브라이언 국토안보부 과학기술국장이 브리핑에서 “물체 표면에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이는데 살균제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백악관은 트럼프가 브라이언 국장의 설명을 듣고 혼잣말처럼 한 것을 언론에서 앞뒤 문맥을 자르고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위해 일부러 비꼬는 투로 말했다고 참모들에게 해명했다.

4월 24일- 분노의 전화

트럼프의 ‘살균제 인체 주입’ 논란이 산불처럼 번졌다.

이날에도 대선 관련 회의가 백악관에서 열렸다. 트럼프는 여론조사가 뒤지고 있다는 얘기를 끄집어내며 다시 불같이 화를 냈다. 또 ‘살균제 인체 주입’ 발언에 쏟아지는 비판을 참지 못하고 오히려 울분을 쏟아냈다.

희생양은 파스케일 선대본부장이었다. 파스케일은 집이 있는 플로리다주에서 선거 상황을 챙기고 있었다.

트럼프는 파스케일에 전화를 걸어 고성으로 험한 말을 퍼부으며 괜한 분풀이를 했다. 트럼프는 전화통화에서 “나는 조 바이든에게 뒤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WP가 트럼프는 ‘비속어들(profanities)’들을 사용했다고 보도한 것을 고려하면 욕설 수준의 말을 쏟아 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파스케일에 “소송을 걸 수 있다”고 위협했다. 한 인사는 소송 부분은 농담으로 들렸다고 설명했다.

분노한 트럼프는 매일 길게 하던 코로나19 브리핑을 이날엔 22분밖에 하지 않았다. 그리고 25∼26일에는 브리핑을 아예 중단했다. 코로나19 브리핑은 27일 재개됐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사실상 굳힌 조 바이든 전 부통령. AP뉴시스

4월 28일- 바이든 공격

플로리다에 있던 파스케일이 백악관을 다시 방문했다. 그는 트럼프와 마주보고 대화를 나눴다. 파스케일은 이번엔 조금 긍정적인 수치가 나온 여론조사를 제시했다.

트럼프의 마음이 많이 풀린 것으로 보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특히 파스케일은 트럼프로부터 새로운 대선 광고 주제를 승인받았다. 그것은 중국에 대한 바이든의 스탠스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바이든이 중국 눈치를 보고 있으며 중국이 바이든의 당선을 원한다는 네거티브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와 파스케일은 화해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났던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 때리기’를 예고했다. AP뉴시스

4월 29일- 중국에 대한 보복 시사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느닷없이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다루는 것은 중국이 나의 재선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며 중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시사했다.

이어 트럼프는 “나는 여론조사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선 ‘맞상대’ 바이든을 비난했다. 트럼프는 “우리 국민들은 똑똑하다. 무능한 사람을 집권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바이든)가 한 모든 일은 형편없었다”고 깎아내렸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처가 이번 대선의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부인했다. 그는 “이번 대선은 우리가 한 모든 일에 대한 국민투표가 될 것”이며 “우리는 아주 잘했다”고 자화자찬을 되풀이했다.

보호장비를 입은 사람들이 3월 30일 미국 뉴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숨진 사람의 장례식에서 관을 옮기고 있다. AP뉴시스

5월 1일- 다시 밖으로

트럼프는 이날 저녁 대통령 전용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로 떠났다. 얼마나 머물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3월 28일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뉴욕항으로 떠났던 미 해군 병원선 출항식에 참석한 것을 마지막으로 한달 여를 백악관에서 지낸 뒤 첫 외출이다.

미국 정부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난 30일로 끝이 났다. 1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것이다. 그러나 외출·영업 금지는 각 주(州) 정부 결정에 달려있다. 조지아주 등 일부 주는 단계적으로 영업 정지를 해제했으나 많은 주에선 외출·영업 금지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는 다음 주 중 대선 격전지 중 한 곳인 애리조나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중단했던 대선 행보를 재개하는 것이다.

일부 참모들은 트럼프가 외부에서 경제 살리기 행보를 하는 것이 대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트럼프를 말리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트럼프가 초기 임상시험에서 긍정적 결과가 나타난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을 서둘렀던 것도 이른 경제 정상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 경우 대선 행보를 서둘러 재개한 트럼프에게 또 다시 ‘비난 쓰나미’가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시간으로 2일 오전 10시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10만 3117명이고, 사망자는 6만 4804명으로 집계됐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