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바둑기사 조혜연(35) 9단이 스토킹 피해를 고백한 후에도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질까 두려워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조씨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가해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48시간 동안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며 “구속은 됐지만 재판에서 형량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 일은 현재진행형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그는 지난 1년여 시간 동안의 일을 이날 털어놨다.
조씨는 “지난해 3월 바둑 교습소를 열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어떤 남성이 찾아왔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며 “돌연 ‘어이 조혜연씨, 잠깐 나랑 얘기 좀 합시다’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이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씨에 따르면 남성은 이후에도 종종 교습소에 찾아왔다. 건물 벽에 뜻 모를 낙서를 남기기도 했다. ‘하나님 아버지 영광 받으소서’ ‘극락왕생’ 등 이해할 수 없는 낙서들이었다. 몇 개월쯤 지나자 남성은 ‘(당신을) 좋아한다’ ‘결혼하자’ 등의 애정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지난달 7일부터 더욱 극심해졌다. 교습소에 찾아와 자신이 나와 결혼한 사이라며 ‘당장 나와라’라고 소리치거나 저속한 욕설을 했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대부분 초등학생인 자신의 제자들이 가장 걱정됐다고 했다. 남성이 늘 술에 취해 찾아왔고, 체격이 건장해 위협적이었던 데다가 성적인 욕설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결국 학부모에게 알린 뒤 정문에 ‘도어락’을 설치했다. 교습소 내부까지 들어오는 게 불가능해진 남성은 건물 출입구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조씨는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씨의 교습소는 인근 경찰서와 100m 정도 떨어진, 매우 가까운 거리라고 한다. 남성이 욕설을 하며 소리지르는 것을 경찰들이 분명 들었을 거라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지난달 7일 이후 경찰에 총 8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성에게 돌아간 것은 통고처분 1회, 즉 벌금 5만원형 뿐이었다고 했다.
조씨는 “스토킹 방지법안이 아마 없거나 굉장히 미약한 것 같다”면서 “고성을 지르는 것만으로는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게 조금 어려운 상황인가보다”라고 말했다. 남성이 정문 비밀번호를 몰라 들어오지 않았으니 주거침입도 아니고, 폭행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씨는 “너무 급해서 가르치던 아이들 4명과 함께 경찰서로 도망을 간 적도 있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도망갔던 것”이라며 “그런데도 직접 상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훈방 조치됐다. 내가 한 대라도 맞아야지 경찰이 뭔가 해볼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남성은 경찰 앞에서도 자신이 조씨와 결혼한 사이라고 주장하거나, “또다시 찾아올 것”이라며 날짜를 예고하기도 했다. 조씨는 “경찰을 만만하게 생각하더라. ‘또 올 건데 경찰이 뭐 어쩔 건데’라는 식이었다”며 “그걸 보고 밤새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썼다”고 말했다. 조씨가 지난달 올린 청원에는 1만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조씨는 “청원을 올리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구속까지는 안 갔을 것 같다”고 했다. 또 “가해자는 나와 지난해 5월에 결혼했다고 주장하는 등 망상이 심한 상태인 것 같다”면서 “그렇다고 심신미약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가해자의 가족들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감형을 염두에 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남성은 지난달 24일 또다시 조씨가 운영하는 바둑 교습소에 나타났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이 남성을 협박, 업무방해, 명예훼손, 재물손괴, 모욕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조씨는 “그간 말도 못 하게 무서웠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번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합의나 선처는 없다. 가해자가 엄벌 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