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가 찍고 칠한 공터의 녹색 …코로나로 더 주목

입력 2020-04-30 16:12
집채보다 큰 암벽이 턱 버티고 서 있는 산비탈. 그 너머로 집들이 성냥갑처럼 쌓여 있는 서울 창신동 동네 풍경이다. 반대편 산비탈에는 조선시대 채석장이 있었다는 돌산에도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이 어려 있다. 바위 아래 공터에는 상추, 파, 호박 등 채소가 심어져 있어 삭막한 도시 변두리 삶에 어떤 위로를 던지는 것 같다.
강홍구, 〈녹색연구-서울-공터-창신동 4〉, 2019. 캔버스 위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채색, 200 x 560 cm.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중견 사진작가 강홍구(64)씨가 이렇듯 버려지고 깎여진 서울의 공터들을 소재로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개인전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원앤제이갤러리에서 갖고 있는 ‘녹색연구-서울-공터’전이다. 사진작가의 작품전인데, 내놓은 것은 사진이 아니라 ‘회화 사진’이다.

전시장의 작품들이 주는 첫 인상은 한 폭의 담채화 같다. 캔버스 표면에 호박 잎, 파 줄기, 아카시아 나뭇잎, 개망초 줄기, 늘어진 버드나무 등이 툭툭 치는 붓질의 매력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발랐던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린 자국도 그대로 남겨뒀다.
강홍구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작품이 <녹색연구-서울-공터 송현동> 연작이다.

자세히 보면 밑바탕은 사진이다. 그는 서울의 공터를 카메라에 담은 뒤 캔버스에 흑백으로 출력한다. 그러곤 사진 위에 붓질로 작업을 새로 한 것이다.

“사진이 못 미더워서요.”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에게 왜 사진 위에 색칠을 하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사진은 변형과 조작(뽀샵) 등이 쉬워졌다. SNS마다 사진이 넘쳐나는 등 폭발적으로 소비되면서 사진의 가치와 신뢰, 위상은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만이 회화 사진을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는 “사진 위에 개인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돌아서면 눈으로 본 것과 사진 사이에는 틈이 생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 눈은 사진과 달리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그는 그런 기억을 회화적 붓질로 덧입힌다. 어떤 경우에는 흑백 사진 위에 원래는 그 자리에 없던 노랑과 분홍 풍선이 초현실적으로 떠 있기도 하다.

강 작가는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이다. 졸업 후엔 회화, 사진, 영상 등 이것저것을 시도하며 암중모색했다. 그러기를 7년. 첫 개인전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사진전이었다. 그렇게 그는 사진작가로 살아왔다. 10년 전부터 사진 작업위에 채색을 시도해왔는데, 이는 한때 화가이고자 했던 본능의 회귀인지 모른다.

그는 주로 도시 변두리 풍경을 피사체로 담아왔다. 목포 출신인 그가 상경해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위치지운 곳이 볼품없는 도시 외곽인 셈이다. 그곳엔 미처 개발되지 못한 공터가 있다. 버려지고 깎여진 서울의 공터는 재개발과 부동산 매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폭력의 흔적이다.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는 그 공터에 보다 포커스를 맞췄다.

이를테면 이른바 ‘송현동 대한한공 부지’가 그렇다.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로 1997년 삼성생명이 1400억원에 매입해 한진그룹에 2900억원에 되팔았고, 한진그룹은 이곳에 7성급 관광호텔 건립을 구상했으나 무산되자 다시 4000억∼5000억원에 매각하려고 하는 서울의 금싸라기 땅이다. 공터로 남아있으니 잡풀과 나무들이 무성한 그곳을 작가는 카메라에 담아 프린트한 뒤 색칠을 했다. 용산 미군기지, 한강의 섬들, 은평 뉴타운, 창신동 채석장 흔적….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녹색에 주목하며 유독 녹색의 자연에만 붓 터치를 하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대형 공터의 녹색 나무와 풀들은 커다란 상처를 임시로 덮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일시적인 유토피아이지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의 탐욕과 자연파괴에 대한 자연의 역습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더욱 울림을 갖는다. 31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