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인 29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12년 전인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40여 명이 근로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유사한 사고가 반복돼 유감스럽다”며 “과거의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천시 모가면의 위치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 2층에서 29일 오후 1시32분 불이 났다. 불길이 치솟자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인 공사현장에선 폭발음만 10여 차례 들렸다는 목격자 진술도 이어졌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20분 만인 오후 1시53분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헬리콥터와 펌프차 등 장비 90대와 소방관 410명이 투입했다. 사투 끝에 오후 4시30분쯤 큰 불길을 잡은 소방당국은 5시간 만인 오후 6시42분 완전히 진화했다.
이날 현장엔 9개 업체 78명의 근로자가 투입됐다. 폭발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자 일부 인부들은 대피했지만, 상당수가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불로 29일 자정 기준 현재까지 희생된 근로자는 38명이다. 지하 2층 18명, 다른 층에서 각각 4명씩 수습된 희생자들은 분산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희생자들이 미처 대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연속적인 폭발, 빠르게 퍼진 유독가스에 의해 변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완공을 두 달 앞두고 마감 공사를 진행하다 불이 난 물류창고 화재는 가연성 소재가 가득한 지하에서 작업하던 중 사고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컸다는 점에서 12년 전 발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두 참사 모두 불에 취약하고 대형화재로 번지는 자재로 지목돼 온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지는 구조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2008년 1월 7일 이천의 한 냉동창고에서 폭발과 함께 발생한 화재로 지하층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소방당국은 유증기에 불티가 옮아붙어 연쇄 폭발과 함께 순식간에 불길과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에 번져 인명피해가 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소방당국은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단열재가 내장된 샌드위치 패널을 대형참사를 낸 ‘주범’으로 꼽았었다.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으로 된 샌드위치 패널 단열재는 한번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녹아내리며 유독가스를 내뿜어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에서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에 대해 “불이 지하에서 시작된 데다 발화 직후 폭발적 연소 및 연기 발생으로 근로자들이 탈출 시간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며 “건물 내부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고 인부 몇 명도 연락이 닿지 않아 사망자 수사 40명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승현 이천소방서장도 “지하 2층에서 우레탄 도포 작업 중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워낙에 크게 폭발해 현장에 있던 근로자들이 피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용접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우레탄은 발화 위험이 넘은 가연성 물질로 용접 불똥만으로도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단열 효과가 뛰어나지만 연소점이 낮아 작은 불씨에도 불이 잘 붙기 때문이다. 불에 탈 땐 ‘시안화수소’라는 맹독성 가스를 내뿜어 한 모금만 마셔도 위험하다.
문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대형화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고 발생 7시간여 만인 오후 8시30분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참모들을 관저로 불러 긴급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유사한 사고가 반복돼 유감스럽다”며 “과거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또 화재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당부하며 다섯 가지 추가 지시를 내렸다. 실종자가 나오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철저히 수색해 달라는 것과 부상자들의 상태가 악화하지 않도록 의료지원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것이다. 또 사망자와 부상자 가족들이 현장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지원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외교 당국과 협의해 가족들에게 신속히 알리고 국내 방문을 희망하는 경우 적극 지원해 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밀양, 제천 등 대형 화재 후 범정부 차원에서 만든 각종 화재안전특별대책을 마련해 추진했으나 또다시 대형화재가 발생한 만큼, 정부의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됐는지 총리가 꼼꼼하게 점검하고, 이런 불상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 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공사장에서 반복적으로 화재가 발생하는 원인을 찾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주문을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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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