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29일 밤 10시 넘어 본회의를 열고 2차 추가경정예산안과 그동안 미뤘던 민생 법안 등 안건 90여건을 뒤늦게 처리했다. 여야는 자정을 넘기자 차수 변경까지 하며 20대 국회 마지막까지 미뤄놓았던 숙제를 부랴부랴 해치웠다.
여야는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운명을 가를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을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달 5일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민주당과 정의당 등에서 반대·기권표가 쏟아지면서 끝내 무산된 바 있다. 민주당은 본회의에 앞서 개최한 의원총회에서 이 법안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자율투표를 하도록 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추경안을 비롯해 다른 안건 처리를 고려해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
여야 의원들은 찬반 토론을 30분 가까이 치열하게 벌였다. 반대 토론에 나선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박근혜정부 금융 관료들이 벌인 일을 수습하기 위해 금융산업의 안전장치를 훼손하는 법안을 왜 20대 국회가 통과시켜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민생당 채이배 의원은 앞서 반대 및 기권표를 던졌던 의원 109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불렀다. 통합당 의석에서 아유와 고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결국 재석의원 209명 가운데 찬성 163명, 반대 23명, 기권 23명으로 가결됐다.
개정안은 인터넷은행 대주주의 한도초과 지분보유 승인 요건에서 공정거래법 위반(벌금형 이상) 전력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KT가 케이뱅크의 대주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내용이라 ‘KT 특혜법’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날 통과로 케이뱅크의 경영 정상화엔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민생당과 정의당,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에선 “코로나19 상황을 틈타 문제투성이의 법안을 야합으로 통과시켰다”고 비난하고 있어 후폭풍이 예상된다.
본회의에선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근로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도 통과됐다.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이 타결되지 않아 무급휴직에 들어간 주한미군 소속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정부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 책정된 지원금 수준은 월 급여의 60% 정도로, 1인당 180만~198만원 선이다.
특별법상 지원 대상은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협정’에 따라 고용된 한국 국적의 근로자다. ‘한국노무단 지위에 관한 협정’ 1조에 따른 고용원도 포함된다. 사실상 현재 무급 휴직 중인 주한미군 근로자 4000여명이 모두 포함되는 수준이다.
여야는 또 그동안 사회적으로 주목받았으나 처리를 미뤘던 어린이 안전관리 관련 법안들도 통과시켰다. 사설 축구클럽 등 체육교습업 차량도 안전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태호·유찬이법’이 가결됐다. 이 법안은 지난해 5월 인천 송도에서 발생한 축구클럽 승합차 사고로 사망한 초등학생 2명의 이름을 딴 것이다.
또 어린이 안전관리 주관 부처를 행정안전부로 명확히 하고, 어린이 안전사고 피해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해인이법’도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2016년 4월 어린이집 하원길에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은 이해인양이 어린이집의 대처 미흡으로 숨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사건이다. 이 법안은 같은 해 8월 발의됐으나 지금까지 계류됐다 3년이 지나 20대 국회 막바지에서야 통과됐다.
박재현 심희정 양민철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