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업황이 금융위기 수준의 바닥을 찍는 상황에서 골프장 경기만 눈에 띄게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공포로 인한 ‘물리적 거리두기’로 상당수 업종이 장기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는 탓에 골프장의 선전은 유독 눈에 띈다.
한국은행이 29일 공개한 올해 4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이달 예술·스포츠·여가 부문 업황BSI는 41로 전달보다 16포인트 상승했다. 비제조업 14개 업종 중 가장 큰 오름폭이다. 비제조업 전체는 3포인트 하락한 50으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3년 1월 이후 최저였다.
BSI는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 수준을 보여주는 수치다. 숫자가 낮을수록 상황을 나쁘게 보고, 높을수록 좋게 본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전국 법인기업을 상대로 조사해 경기 동향을 파악한다. 업체는 경기에 대한 판단을 ‘나쁨’ ‘보통’ ‘좋음’ 중에서 선택한다.
예술·스포츠·여가 부문의 지수 상승을 주도한 건 골프장이었다. 다른 업종은 여전히 부정적 응답이 지배적이었지만 골프장만은 이용객이 늘면서 응답이 두드러지게 개선됐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 기업통계팀 관계자는 “응답이 ‘나쁨’에서 ‘보통’으로 전환한 것이긴 하지만 예술·스포츠·여가 업종 중 그렇게 달라진 업체는 골프장밖에 없었다”며 “테마파크나 공연장 등 나머지는 아직도 ‘나쁨’을 유지한 업체가 많았다”고 전했다.
여느 업체들 사정이 여전히 나쁜 상황에서 전체 지수가 크게 높아졌다는 건 골프장들의 체감경기 개선 정도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골프장들 역시 이달 업황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조사된 4월 예술·스포츠·여가 업황전망BSI가 28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골프장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실외 골프장 이용객은 이달 들어 부쩍 늘어나는 모습이다. 골프장의 체감경기 변화가 반영된 예술·스포츠·여가 부문의 매출BSI는 지난달 25에서 이달 43으로, 채산성BSI는 같은 기간 42에서 59로 큰 폭 상승했다. 통상 실외 골프장은 겨울에 발길이 줄었다가 봄부터 성수기로 접어들지만 올해 3월은 코로나19 탓에 비수기나 다름없었다.
체육시설 이용을 자제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사람 간에 비교적 먼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골프장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해 이용객이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날이 풀린 데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느 정도 진정됐다는 점은 야외활동을 자극하면서 골프장 이용객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골프장이라도 실내 시설은 여전히 경기 인식이 나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 관계자는 “야외활동 관련 업체는 다음 달에 어떻게든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곳이 더러 있었다”며 “실내체육시설이나 공연장 같은 곳은 아직도 기대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